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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락학설**
    經絡  第1節  經絡學說의 槪要 經絡은 전신에 두루 퍼져 있는데 인체의 氣, 血, 津液이 운행하는 주요 통로이며, 인체의 각 부분이 서로 연결되게 하는 길이다.  예컨데 󰡔難經󰡕1)에서 “經脈은 血과 氣를 운행시키고 陰陽을 통하게 하여 몸에 영양을 공급하게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인체의 모든 臟腑, 器官, 孔竅 및 皮毛, 筋肉, 骨格 등의 조직은 經絡의 交通과 連結에 의해서 하나의 통일체로 이루어진다. 經絡은 인체내의 각 부분간의 상호관계와 그들 사이의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밝히고, 이러한 상호관계가 인체의 생명활동이나 病理變化,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는 臟腑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韓醫學의 기초이론 가운데 중요한 구성성분이 되고, 韓醫學의 임상 各科 특히 침구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經絡學說은 동양인들이 수천년이래 질병과 싸운 경험의 총괄로 이룩된 것이다. 고대의 醫家들은 장기적인 의료실천과정에서 인체의 질병에 나타나는 각종 證候와 치료에서 얻어지는 효과를 관찰하여, 인체에는 각종의 일정한 현상이 있음을 더욱 알게 되었다.  예컨대 身體表面의 一定部位를 刺戟하면 어느 體表 혹은 內臟의 疾病을 治療할 수 있으며, 內臟機能에 病理變化가 발생하면 전신 혹은 體表에 각종의 相異한 症狀과 體徵의 반영이 나타나고, 개개의 臟器에 疾患이 있으면 상호 영향을 미치어 疾病의 傳變과 발전에도 일정한 과정이 있다는 등등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장기간에 걸친 醫療實踐經驗의 축적을 통하여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됨으로써 이러한 經絡學說이 창립되었다.  經絡學說에 의하면, 인체내에 經絡系統이 있으며, 이로써 하나의 整然하고 統一된 有機體를 構成하게 된다. 體內의 各組織 臟器사이에는 모두 緊密한 關聯이 있어서, 經絡은 人體의 內外 表裏 上下 左右의 各 方面에 걸쳐 주요한 聯關作用을 하고 있다.  經絡에는 主幹과 分枝가 있어서, 內部로는 臟腑에 連屬되고, 外部로는 五官七竅(鼻‧目‧口唇‧舌‧耳)‧四肢百骸에 分布되어 全身을 綱目과 같이 連絡하여 氣‧血을 連行시키면서 體內와 體表에 流注하고 있다.  故로 󰡔靈樞․海論󰡕에서 說하기를 “夫十二經脈者, 內屬于臟腑, 外絡于支節……”이라 하여, 體內의 臟腑와 體表의 肢節사이에 密接한 關係가 있음을 主로 經絡의 關係에 의하여 實現되는 것으로 說明한 것이다. 鍼灸의 臨床에서는 經絡을 判別하고, 穴位를 選定하며, 刺法을 運用하고, 氣血을 調整함에 있어서 經絡理論이 基礎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靈樞․經別󰡕篇에서 說하기를 “夫十二經脈者, 人之所以生, 病之所以成, 人之所以治, 人之所以起……”라고 하였다. 이는 人體의 正常的인 生理機能의 維持와 疾病의 發生原因을 究明함에 있어서 모두 十二經脈과 重要한 關係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아울러 治療措置를 決定함에 있어서 十二經脈이 根據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  第2節  經絡의 作用  1. 運輸作用 韓醫學의 理論에 根據하여 說明하면 다음과 같다.  人體 臟腑의 生理機能이나 皮肉 筋骨 四肢百骸가 正常機能을 維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陽氣’와 ‘陰液’의 營養供給에 依存하는 것이다.  陽氣란 人體中의 各種의 氣 例컨대 元氣‧宗氣‧營氣‧衛氣‧臟腑의 氣 等을 가리킨다. 陰液이란 體內의 各種 營養液體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精液‧血液 및 津液 等이 包括된다.  이와 같이 陽氣와 陰液에 많은 內容이 包含되는데, 通常 氣血이라고 略稱한다. 氣血이 經絡을 通過하여 全身에 輸送, 散布됨으로써 組織‧臟器가 正常的인 生理活動을 發揮할 수 있다.  󰡔難經․二十二難󰡕에서 “氣主煦之, 血主濡之”라고 한 것은 氣가 機能活動의 에너지이고, 血이 濡潤 滋養의 源泉임을 가리킨다. 󰡔靈樞󰡕에서는 “經脈者, 所以行氣血而營陰陽, 濡筋骨, 利關節也”라 하였다.  이는 經脈이 氣血의 運行되는 經路이며, 經絡은 縱橫으로 交叉해서 體內와 體表에 分布되어 全身에 營養을 供給하여 生體가 正常的인 機能을 維持하는데 있어서 重要한 作用을 하는 것임을 가리킨 것이다.  2. 反應作用 人體에 만약 어떤 發病因子가 侵襲하여 臟腑의 正常機能이 損傷되어 疾病이 發生한 경우, 經絡은 生體의 各 部分과 特殊한 關係를 맺고 있으므로 經絡이 연결된 體表의 有關部位를 살펴보아 按壓하는 等의 方法으로 各種의 異常變化를 發見할 수 있다. 이러한 反應點을 現代名稱으로는 壓痛點 혹은 過敏點이라 한다.  古代의 醫書, 例컨대 󰡔千金要方󰡕에는 “摩呤肉之表, 肋間空處, 按之自覺牽引胸中”이라 하였고, 󰡔靈樞․九針十二原篇󰡕에서는 “五臟有疾也, 應出于十二原, 十二原各有所出, 明知其原, 睹其應, 而知五臟之害矣”라 하였다.  이러한 異常을 반영하는 體表의 반응점은, 질병을 진단하는데 참고가 될 뿐만 아니라, 刺鍼施治의 穴位가 된다. 古代의 문헌에 記載된, “以痛爲腧”󰡔靈樞․經筋󰡕와 後世에서 일컫는 阿是穴, 天應穴 등은 모두 이 原理에 의거한 것이다.  3. 傳導作用 經絡은 病邪의 侵襲에 依하여 傳導作用을 가진다. 體表에 侵襲한 病邪는 經絡을 통하여 內臟으로 傳入되고, 內臟間의 經絡의 關聯에 依하여 病邪는 하나의 內臟에서 다른 內臟으로 傳入하는데, 이를 “病邪之傳變”이라 稱하며 傳經이라고 略稱하기도 한다.  例컨대 󰡔素問․繆刺論󰡕에서는 “夫邪之客于形也, 必先舍于皮毛, 留而不去, 入舍于孫脈, 留而不去, 入舍于絡脈, 留而不去, 入舍于經脈, 內連五臟, 散于腸胃”라 하였다.  이는 經絡이 病邪를 傳導하는데 對한 古代 醫家의 綜合的인 槪念이며, 어느 정도 客觀的 實體와 符合되는 것이다. 鍼灸療法과 現代的인 電氣針‧水針 等 各種 方法은 物理的 或은 化學的 刺戟을 體表의 一定部位에 加하여 疾病治療의 目的을 達成하는 것이며, 이는 經絡의 傳導作用이라는 原理에 依據한 것이다.  人體에서 經絡의 氣는 全身의 颸穴에서 發生한다. 󰡔靈樞․九針十二原篇󰡕에서 “節之交, 三百六十五會, 所言節(颸穴)者, 神氣之所游行出入也”라고 하였다. 故로 刺戟의 主要關鍵은 調氣에 있다.  所謂 “刺之要, 氣至而有效”, “刺之而氣不至, 無問其數”(󰡔靈樞․九針十二原󰡕)이다.  調氣란 經絡의 傳導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氣血의 調整作用이다. 經絡 或은 內臟의 機能이 失調했을 때, 體表 一定部位를 鍼灸 等으로 刺戟함으로써 經絡이 그 治療性 刺戟을 有關한 部位와 內臟으로 傳導할 수 있다.  그래서 人體의 氣機가 調節機能을 發揮하여 氣血의 運行을 圓滑하게 하고, 營衛가 調和되어 疾病을 治癒하게 된다. 鍼灸治療와 經絡의 傳導作用과의 關係는 具體的으로 經絡이 循行하고 있는 經絡上에서 適當한 穴位를 選定하여 治療를 進行함으로써 表現된다.  經絡의 傳導作用은 刺針時에 病因이 酸, 脹 等의 感覺을 經絡의 循行經路를 向하여 擴散되는 것으로 느끼게 되며, 어떤 患者는 病所에 直達되는 것으로 表現되기도 한다.  그밖에 一部 病例에서는 刺針後에 病因의 皮膚에 이상한 色澤이 나타나서 線狀으로 延展되어 그것이 經絡의 分布經路와 基本的으로 一致되는 경우도 있다.  第3節  經絡系統의 分布 經絡이란 經脈의 總稱이다.  經絡學說에 依據하면 經脈과 絡脈은 人體各部를 縱橫으로 交叉하여 連絡網으로 分布되었는데, 臟腑에서 皮膚, 肌肉, 筋骨 等 一切의 組織에 이르게 되며, 經絡이 그를 貫通해서 하나의 統一的 綜合體를 構成하고 있다.  經絡系統의 構成內容을 四個 部分으로 나눌 수 있다.  즉 經脈과 絡脈은 안으로 臟腑에 屬하는 部分과 밖으로 體表에 連하는 部分이 있다.  그 主要內容은 經脈과 絡脈이다.  經脈과 絡脈의 區分은 다음과 같다. 人體의 主幹으로 縱橫하여 比較的 深層에 分布된 것이 經脈이고, 分枝로 橫斜行하여 比較的 表層에 分布된 것이 絡脈이다.  經脈과 絡脈의 關係를 論하면 經脈이 主體이고, 絡脈은 附着된 分枝로서 經脈과 絡脈은 密接하게 聯關되어 있다. 經絡은 經脈과 絡脈으로 나누어 지는데 다시 經脈은 正經과 奇經으로 나뉘어서 正經에는 12正經과 이에 딸린 12別經이 있고 奇經에는 奇經八脈이 있다.  다시 絡脈은 十五絡脈과 絡脈, 孫絡, 浮絡이 있다. 經脈은 肢體의 一定部位에 分布되었을 뿐만 아니라 體腔에 많이 分布되어 ‘經筋’과 ‘皮部’에 聯係되고 있다.  經絡系統의 具體的 內容은 아래와 같다. 經 絡 系 統 表 十二經脈 - 內屬臟腑, 外連肢節 十二經別 - 經脈에서 分出하여 다시 經脈으로 합친다 奇經八脈 - 別道를 奇行하는 經脈의 分枝 連絡經路 十五絡脈 - 主된 絡脈(大絡) 絡 脈 - 經脈이나 絡脈에서 分出된 橫斜行하는 分枝 經 絡 孫 絡 - 絡脈의 細小한 分枝 浮 絡 - 體表에 浮現하는 絡脈 內屬外連 內屬 - 臟腑 - 經脈 및 一部 絡脈과 連屬됨 外連 - 十二經筋 - 體表에 分布되고 臟腑에는 不入 十二皮部 - 皮部上의 經絡分布領域  1. 十二經脈  1) 十二經脈의 槪念 十二經脈이란 人體의 主軸을 形成하고 있는 縱的方向으로 貫통하고 있는 十二個의 幹線 卽, 手太陰肺經‧手陽明大腸經‧足陽明胃經‧足太陰脾經‧手少陰心經‧手太陽小腸經‧足太陽膀胱經‧足少陰腎經‧手厥陰心包經‧手少陽三焦經‧足少陽膽經 ‧足厥陰肝經 等을 指稱한다.  十二經脈은 全身에 分布되었는데 內行路線과 外行路線의 두 部分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陰經經脈은 五臟(六腑)中의 一臟에 內屬하며, 外行하는 徑路는 四肢의 內側에 分布된다.  陽經經脈은 六腑 中의 一部에 內屬하며 外行하는 經路는 四肢의 外側에 分布된다. 軀幹部에 있어서의 分布는 陽明‧太陰經이 身體의 前面을 循行하며, 太陽,少陰이 身體의 後面을 循行하고, 少陽‧厥陰經이 側面을 循行한다.  卽 手三陽經은 胸部와 上肢內側에 分布되고, 手三陽經은 頭部顔面과 上肢外側에 分布되며, 足三陽經은 頭部顔面과 下肢外側에 分布되고, 足三陰經은 胸腹部와 下肢內側에 分布되어 있다.  十二經脈은 胸背, 頭面, 四肢에 分布되었는데 모두 左右 對稱으로 되어 合計 24經脈이 된다. 其中 每一經脈의 陰經은 一條의 陽經과 體內에서는 臟腑가 相互 屬絡關係를 맺고, 體表에서는 內側과 外側이 表裏關係를 이루게 된다. 이들 十二經脈의 名稱의 由來는 다음 세가지로 說明되고 있다.  1. 陰陽學說에 根據하여 그 性格에 따라서 陰陽으로 分類하고 그 깊이에 따라서 三陰三陽으로 分類하고 있다.  2. 特定한 臟腑에 配當시켜서 각기 配當된 臟腑의 名稱을 붙이고 있다. 이때의 臟腑의 槪念은 機能으로 理解할 必要가 있다.  3. 各 經脈의 起始點이나 終着點에 該當되는 部位의 名稱(手足)을 各 經脈의 모두에 붙여서 呼稱하고 있다.  以上과 같이 經脈을 그 性格과 循行方法에 따라서 手足三陰三陽의 十二經으로 分類되고 있으나 이들 十二經은 각기 하나씩 獨立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고리처럼 連結되어 全身 어느 곳이나 미치지 않는 곳 없이 循環하고 있다.
    한의학경혈이야기
  • 봉한학설(김봉한 학자)-경락의 대발견 김봉한, 그는 누구인가?경락의 대발견세포복제의 수수께끼, 산알학설폐기되는 봉한학설봉한학설을 부정한 서구의학계동의학계의 반발생체실험 여부에 대한 논란김봉한봉한학설의 미래***** 김봉한, 그는 누구인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경락과 경혈 개념이다.동양의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인 경락은 전신(全身)을 달리면서 인체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주관하는 통로라고 알려져 왔다.인체에 질병이 생길 때 그 증상이 최초로 나타나는 곳이 경락이고, 또 질병 치료도 그 경락을 조절함으로써 가능하다.경락을 조절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침구(針灸)법이다. 김봉한? 봉한학설? 많은 이들은 아마도 김봉한이라는 이름과 봉한학설이라는 이론에 대해 생소할 것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봉한학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김봉한은 동양의학의 근간이 되는 경락의 실체를 밝혀낸 북한의 의사이자 과학자이고 봉한학설은 경락론을 입증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김봉한, 그는 누구인가? 김봉한,『북한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간단한 그의 이력이다.1941년경성제대 의학부 졸업1950년한국전쟁 당시 월북53년 1월평양의학대학 생물학 부교수61년 8월논문 「경락 실태와 그 관계」발표62년 1월학위-학직 수여위원회 제4차 상무위원회에서 의학박사 학위, 평양의학대학 생물학 강좌장63년 11월경락 연구의 새 성과에 대한 학술 논문 발표>64년 3월내각 직속 「경락연구원」 창설에 따라 경락연구원장64년 4월생명 유기체의 자기 갱신에 관한 신학설 제창김봉한,『북한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간단한 그의 이력이다. 김봉한은 의학 뿐만 아니라 물리학, 화학, 수학등에도 뛰어난 식견을 갖춘 과학자였다. 일제 대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해 북한에서 교수생활을 계속했다. 김봉한은 당시로서는 첨단 분야였던 원자물리학에 관심이 깊었다. 그가 대학에서 공부하던 1930년대 말은 아직 최초의 원자폭탄도 만들어지기 이전이어서 원자물리학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공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분야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자물리학을 열심히 해둔 덕분에 나중에 경락체계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얻는다. 그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방사선 방출 성질을 이용한 방사선추적법을 이용해 경락의 존재를 증명했던 것이다.***** 경락의 대발견 *****김봉한은 1960년대,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경락을 추적해 나간다. 전자현미경, 분광분석기, 오토라디오그래프, 특수색소도포, 전기적 분석 등으로 당시 선진국의 과학자들도 접근하기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김봉한이 그런 기계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독특한 실험연구방법을 창안하여 경락의 실태를 파악하였는바, 동물 및 인간 유기체 내에는 조직학적 및 실험생리학적 성질에 있어서 신경계통, 혈관 및 임파 계통과는 명확히 구별되며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해부조직학적 계통으로써 경락 계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해명하였다』1962년 북한에서 발행하는 『조선중앙연감』에서 김봉한이 경락의 실체를 발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경락상의 중요 지점인 경혈(經穴)은 침을 놓고 뜸을 뜨는 자리이므로 경락론은 한의학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경락과 경혈의 해부학적 실체가 밝혀지지 않아 서양의학에서는 그 존재를 무시하고 있었다. 나아가서는 경락을 토대로 전개되는 동양의학 전체를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학이라고 멸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발행된 『세계미신사전』에는 동양의학이 미신의 하나로 등재돼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경락의 과학적 객관적 실체를 구명했다고 하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1964년의 『북한중앙연감』에는 김봉한팀의 계속적인 놀라운 연구 성과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김봉한 교수를 비롯한 경락 연구집단들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1961년 경락실태를 발견한 후 그에 관한 연구를 독창적 방법으로 더욱 심화 발전시켜 경락계통의 형태와 그 기능의 전 면모를 기본적으로 확정하였으며 특히 핵산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을 세상에 내놓았다.(중략) 경락계통에 관한 연구 성과는 경락 계통의 엄격한 객관적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생체의 조절기전을 포함한 생명 현상의 근본문제를 일면적으로 설명하여 온 기존 학설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이 업적은 세포의 분화, 물질대사, 유전, 유기체의 반응현상, 질병의 발생과 그 발전 등 현대 생물학과 의학 부문 앞에 제기되고 있는 당면한 근본 문제들을 연구 해명함에 있어서 광명한 전망을 열어주며 또한 인간의 건강과 장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새로운 서광을 비춰준다. 이 위대한 발견은 현대 생물학과 현대 의학 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한 혁명적 사변이며 세계과학사에 금자탑을 이루어 놓았다』 김봉한팀은 1961년 「경락에 관한 제1논문」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63년 「제2논문」을 발표했다. 제2논문은 경락의 실체가 분명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경락의 기능이 동양의학 고전에 기록되어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생물학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유사 이래 축적된 서양의 모든 과학업적에 가해진 한 방의 케이오(KO) 펀치 같은 것이었고 가히 혁명적인 사변의 뜻을 띠고 있었다. 북한 당국의 대대적인 선전에 힘입어 김봉한팀의 연구성과는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북한을 방문했고 김봉한팀에 대한 초청장이 쇄도했다. 이 연구 성과는 동양의학 이론에 확고한 과학적 및 물질적 근거를 부여하며 현대 생물학과 의학의 각종 이론들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 것이었다. ***** 세포복제의 수수께끼, 산알학설 *****그리고 다시 1년 3개월만인 1965년 4월 제3논문 「경락학설」과 제4논문 「산알학설」이 발표되고, 6개월 후 1965년 10월 제5논문 「경락의 객관적 실체 구명」이 마지막으로 발표되기에 이른다. 김봉한 연구팀의 성과는 마침내 『봉한학설』이라는 독특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서양의학을 전공했지만 폭넓은 기초과학 지식을 갖고 있던 김봉한은 연구에 착수한 지 5년 후부터 경락과 기의 객관적 실체를 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락은 고전 경락학설의 설명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 경락은 생명의 발생과 유지를 원천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봉한학설에서 침구술 같은 경락 조절 의술에 의한 질병 치유 효과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연구 중의 하나는 태아 수태시의 경락에 대한 관찰이다. 놀랍게도 수정란으로부터 태아가 수태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경락 조직이었던 것이다. 경락이 가장 먼저 발생해 다른 조직의 형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락이 생기지 않고는 다른 어떠한 조직이나 기관도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경락에 이상이 생기면 해당 기관에 이상이 생겨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과 건강을 관리할 때, 생명 유지의 원천적 책임 조직인 경락을 조절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김봉한팀은 계속해서 서구의 의학과 생물학에서의 설명들을 뒤집어엎는 결과들을 발표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1965년에 발표한 「산알학설」이었다. 산알학설의 골자는 세포 이전의 형태로 산알이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경락을 순환하면서 세포의 생성과 사멸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포가 세포분열에 의해서만 생긴다는 종래의 세포이론을 뒤엎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고전 경락이론을 하나의 거대한 학문 체계로 완성한 김봉한팀의 독보적 업적이었다. 봉한학설은 1960년대 초반 북한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북한 당국은 그것을 국내외에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폐기되는 봉한학설 *****그러나 북한이 「세계과학사에 금자탑을 이룬 업적」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김봉한의 봉한학설. 한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과 경혈의 실체를 밝혔다고 알려진 봉한학설은 하루아침에 폐기되고 김봉한은 숙청당한다. 북한에서 1987년 일가족을 데리고 월남한 김만철씨의 증언에 따르면 봉한학설은 학문외적인 이유, 바로 정치적인 권력싸움에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김봉한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북한의 권력서열 제 4위인 박금철이 숙청되면서 김봉한도 지지기반을 잃어서 봉한학설이 유폐되었다는 얘기이다. 봉한학설의 탄생과 소멸이 박금철의 권력층 재임시절인 1956∼1967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가 1967년 이후 돌연 사라지게 된 것을 보면 김만철씨의 증언과 부합된다. 북한 당국이 김봉한의 공로를 치하하고, 급기야 그를 위한 별도의 연구소인 경락연구원을 설립하게 만들었던 『봉한학설』이 폐기된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 외에도 훨씬 복잡한 요인들이 겹쳐 있었다.***** 봉한학설을 부정한 서구의학계 *****김봉한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서양은 동양의학을 도무지 과학적 의학이라고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해부학 교과서에는 물론 경락이란 것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김봉한이 경락의 실체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경락이 생명의 발생과 영위에 결정적이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구명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경락이 엄연히 존재하고 또한 생명 현상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2천년의 전통을 가진 서양의학이 경락의 존재와 기능을 전혀 모르는 「반쪽 의학」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 현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모른 채, 어떻게 사람의 질병을 제대로 진료하고 또 어떻게 생명을 논할 수 있겠는가? 세계의학계는 긴장했다. 김봉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소련과 동구권은 물론이고 세계의 모든 의사와 관련 학자들은 경락의 개념을 기본으로 하는 동의학을 학습해야 될 판이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발표했던 모든 논문이 우습게 될 것이고 또 의학과 생물학에 관련된 각급 학교의 모든 교과서들을 고쳐 써야만 했다.한글로 쓰인 의학 서적과 교과서를 수입해서 공부해야 만 할 형편이었다. 그들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67년 소련 의학계에서 『경락에 대한 실태 발견은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소련의 불인정 발표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한의학 경시 태도 이외에도 소련 의학자들의 능력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방대한 분야의 학문과 기술에 통달한 위대한 천재과학자 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동의학계의 반발 *****봉한학설이 궁지에 몰리게 된 데에는 중국의 한의학계나 북한 내 동의학계의 지지 부족과 반발도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양 전통의학계에서 공식적인 반박이나 불인정 발표는 없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한(漢)의학계나 북한의 동의학계에서 적극적인 지지가 부족했거나 다소간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높이 평가받던 봉한학설이 소련 의학계의 간단한 발표 하나로 하루 아침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소련의 발표가 있은 1967년 이후에도 북한 내에서 봉한학설의 진위 여부에 대해 한동안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적극적인 지지가 불가능했던첫째 이유는 봉한학설이 전개하고 있는 경락 계통이 동의사들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만큼 거대하고 역동적인 체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처음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던 봉한학설의 경락 계통이 동의사들의 능력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에 뭐라고 논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심으로는 봉한학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둘째 이유는 김봉한이 구사한 연구 방법론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에다 전자현미경, 방사선 추적장치, 분광분석기 등 첨단 장비로 무장돼 동의사들의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셋째 이유는 기득권을 갖고 있던 기존 동의사들의 불만을 들 수 있다. 북한 정권 창립 후 줄곧 실시한 동의학 중흥 정책 덕분에 김봉한의 연구 발표가 시작된 1960년대에는 동의학계에 일정한 질서와 체계가 잡혀 있었을 것이다.따라서 능력이 있고 경험이 많은 동의사들은 동의학계의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서양의학을 전공한 김봉한이 동의학계의 최고 실력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에 기존 동의학계 원로들의 반발이 컸을 것임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앞에 말한 세 가지 이유 외에도 동양 전통의학계의 반발을 유발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동양 전통의학에서 수천년 동안 경락이란 명칭으로 불리던 것을 김봉한의 이름을 따서 「봉한관」이라고 다시 명명한 점이었다. 그리고 경혈은 「봉한소체(小體)」라 명명했던 것이다. 수천년 동안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의학계에서 공히 경락이라 부르던 것을 하루 아침에, 별로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람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바꾸는 것은 전통의학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황제(黃帝)나 신농(神農)과 함께 많은 의인(醫人)들이 추앙하던 역사상의 명의들에 대한 불경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그러나 김봉한 연구팀이 경락을 다시 명명하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경락을 추적하다 보니까 경락 계통이 고전 전통의학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면서도 조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북한에서는 어떤 작품이나 업적에 창설자나 공로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제철소 등이 그 예다.***** 생체실험 여부에 대한 논란 *****북한당국이 김봉한을 정치적으로 숙청해야 했던 절박한 이유가 바로 생체실험 여부에 대한 논란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956년대 후반 경락을 연구하던 김봉한팀은 생체실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경락이 생물의 죽음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기에 오직 살아 있는 생물에서만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동물실험을 통해서 경락을 확인했다. 그러나 인체에서 경락을 확인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수술시에는 살아 있는 인체 내부를 관찰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술이 목적이기 때문에 충분한 관찰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특별한 경우」의 조건이 조성되었다. 동의학 과학화 작업 추진을 결정한 1956년 8월 당대회에서는 「8월 종파사건」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소위「연안파」를 중심으로 한 반(反)김일성 세력이 조직적으로 김일성에게 저항했다 실패한 사건이었다.유례 없는 조직적인 저항에 혼이 난 김일성은 「8월 종파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 『인간 취급을 하지 말고, 씨를 말리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말로 믿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김봉한으로부터 인체 생체실험 필요성을 보고 받고 있었던 당국자들이 숙청된 종파분자들을 생체실험용으로 쓸 것을 김봉한팀에게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김봉한팀은 할 수 없이 생체실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봉한학설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외국 학자들은 봉한학설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생체실험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봉한학설에서 생체실험 문제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였다.생체실험을 했어도 문제가 되지만 하지 않았어도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생체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경락이 살아 있는 생물체에만 존재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실험만으로 인체에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된다. 했어도 문제가 되고, 하지 않았어도 문제가 되는 심각한 사안임을 깨달은 북한 당국은 서둘러 봉한학설을 폐기하고 김봉한을 숙청하는 것으로 문제를 덮으려 했을 것이다. 이상의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결국 김일성은 김봉한의 발견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김봉한이란 이름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그의 학설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돼버렸다. 『조선중앙연감』에는 1962∼1965년 판까지는 김봉한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그 어디에도 김봉한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동의학 관련 자료와 인물을 집대성한 『동의학사전』에도 다른 동의학자들은 많이 소개돼 있지만 김봉한은 없다. 철저히 폐기시켜버린 것이다. 「조선의 망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견디지 못한 김봉한은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연구원 건물 고층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혹자에 의하면 아오지 탄광으로 유폐되어 거기서 자살했다는 말도 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김봉한이란 이름은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김봉한 『Kim Bonghan』 ***** 미국의 한 의학박사가 의학의 정통 이론에서 벗어난 여러 가지 대안적 의술을 소개한 베스트셀러(1988년 발행)는 침술 편에서 김봉한을 다루고 있다.「김봉한」이라는 한국인 이름의 영문 표기「Kim Bong Han」「North Korean Scientist」, 즉 「북한의 과학자」라는 대목이 있는데, 책에는 김봉한팀이 서양 의학과 과학이 빠뜨리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김봉한팀이 동양의학의 핵심적 개념인 경락의 실체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경락이 진단과 치료의 핵심체이며 아울러 생명 현상의 근원이라는 것을 구명했다』고 적고 있다. 경락이란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신비스러운 개념이기는 하지만 그 실체를 구명할 수가 없어서 현대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그 실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서양의학을 전공하는 일본의 의학자들은 「동양의학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서원당 1991)에서 '봉한소체와 봉한관은 이론이 대단히 정연하게 기재되어 있어서 이것이 고전적인 경혈과 경락을 해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그 후의 추론적 실험들이 실체가 불명인 채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봉한학설은 그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많아 앞으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봉한학설의 가치를 조심스럽게 평가하고 있다. 봉한학설에서 경락관, 다시 말해 봉한관은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조직이다. 생명현상을 논할 때 봉한관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조직을 왜 현대의 의학자들은 적극적으로 확인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한의학을 객관화하고 현대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봉한학설을 어째서 이토록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전통의학은 그 세가 서양의학에 밀리기는 했지만, 동부아시아 지역에서 그 맥이 유지돼 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전통의학이 서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중국을 방문한 서양 인사들이 침술의 놀라운 효능을 경험하고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널리 알렸던 것이다. 이후 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침술을 연구했다.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그들은 『경락과 경혈의 존재 여부야 어떻든간에, 분명한 것은 침술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서양의학의 대세는 경락의 존재와 침술을 공인하지 않는 쪽이다. 경락의 존재와 침술의 공인은 곧 서양의학의 자존심의 엄청난 실추와 의학계의 일대 개편을 의미하는 것이다.***** 봉한학설의 미래 *****봉한학설은 전통적 침구법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외에도, 최근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 대안적 건강법들, 즉 기공(氣功), 단전호흡, 도인(導引) 법 같은 것들이 서양의학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기법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이 기법들은 모두 경락과 기(氣)의 개념에 그 이론적 토대를 두 고 있는 것이다. 봉한학설은 또한 인류에게 노화와 죽음의 문제에 도전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체의 주요한 기관은 모두 경락 계통을 순환하는 산알에 의하여 끊임없이 갱신 되고 있다. 이러한 경락과 산알의 기능이 곧 그 개체의 노화와 죽음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산알을 순환시키는 경락 계통의 기능이 쇠퇴하면 노화가 일어나고, 기능이 정지 하면 그 개체에 죽음이 닥쳐오는 것이다. 경락의 기능이 쇠퇴하지 않으면 노화 현상이 생기지 않고, 또 경락의 기능이 정지하지 않는 한 죽음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봉한학설의 출현과 그 후속 연구 성과는 전세계 인류의 질병을 백발백중으로 치료하고 노화를 억제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도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이러한 백발백중의 의술은 근대에 있어서 서구 과학 기술을 압도하는 최초의 거대한 원천기술이기 때문이다. 치료 기술의 판매에 의해 엄청난 부(富)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세계 인류가 쓰는 의료비용을 어림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의료비용을 전세계 GNP의 1%로만 잡아도 수천억달러에 이른다. 전세계 경제력의 판도를 바꿀 만한 엄청난 돈이다.이 글은 OK 종합병원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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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10개월과 경락
    ♥임신 1개월은 배태(胚胎 )라고 하는데 이 때는 엄마의  "족궐음 간경맥"이 태아를 기른다. -간-은 근육과 혈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태아가 처음 생기는 시기여서 엄마는 근육과 혈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힘든 일을 하지말고 놀라거나 차가운 쇠소리 등을 피해야한다. ♥임신 2개월은 시고(始膏)라고 하는데 이때는 엄마의 "족소양 담경맥"이 태아를 기른다. 이때는 간과 담의 기운에 맞게 신맛의 음식을 먹게되고 구토나 헛구역질 등 입덧이 심해진다. 또한 변덕이 심해지고 우유부단 해지는데 이는 담낭이 허해지기 때문이다.   ♠임신 3개월은 시태(始胎)라고 하는데 이때는 엄마의 "수궐음 심포경맥" 이 태아를 기른다. 태아의 태반이 완전히 착상을 하고 남녀의 구분이 분별되는 시기로 이 때는 엄마가 잘 놀래거나 우울해지거나 쉽게 화를 내는 시기이다. 이는 심포가 심보 즉 마음을 뜻하고 심장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4개월이 되면 엄마의 "수소양삼초경맥' 태아를 기르게 되는데 태아의 형상이 뚜렷해지고 육부가 순차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 때는 명치끝이 답답해지고, 구토가 생기며 배가 더부룩해지면서 입맛이 없어진다. 소변도 시원치않게 자주 보고 아랫배가 당기고 아플 수가 있다. ♧임신 5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태음 비경맥"이 태아를 기르게 되는데 태아의 근골, 기육, 모발 등이 이루어지고 소화기관과 몸을 만들어 주는 시기이다. ♧임신 6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양명위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이때는 태아의 이목구비가 완성되고 사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는 마음이 불안하고 몸이 춥거나 무거우며 잘 놀래고 두려움을 잘 느낀다. 임신 7개월이 되면 엄마의 "수태음 폐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태아의 피부와 모발기능을 완전하게 해준다. 이때는 호흡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곤란해질 수 있으며 기혈이 흐트러질 수 있다.   ⊙임신 8개월이 되면 엄마의  "수양명 대장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태아의 구규기능을 주재한다.   ⊙임신 9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소음신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이때는 태아의 형상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임신 10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태양방광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이때는 기를 충분히 받아서 오장 및 육부그리고 나머지 기관이 모두 갖추어진다.
    인산의학태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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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한학설(김봉한 학자)-경락의 대발견 김봉한, 그는 누구인가?경락의 대발견세포복제의 수수께끼, 산알학설폐기되는 봉한학설봉한학설을 부정한 서구의학계동의학계의 반발생체실험 여부에 대한 논란김봉한봉한학설의 미래***** 김봉한, 그는 누구인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경락과 경혈 개념이다.동양의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인 경락은 전신(全身)을 달리면서 인체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주관하는 통로라고 알려져 왔다.인체에 질병이 생길 때 그 증상이 최초로 나타나는 곳이 경락이고, 또 질병 치료도 그 경락을 조절함으로써 가능하다.경락을 조절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침구(針灸)법이다. 김봉한? 봉한학설? 많은 이들은 아마도 김봉한이라는 이름과 봉한학설이라는 이론에 대해 생소할 것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봉한학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김봉한은 동양의학의 근간이 되는 경락의 실체를 밝혀낸 북한의 의사이자 과학자이고 봉한학설은 경락론을 입증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김봉한, 그는 누구인가? 김봉한,『북한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간단한 그의 이력이다.1941년경성제대 의학부 졸업1950년한국전쟁 당시 월북53년 1월평양의학대학 생물학 부교수61년 8월논문 「경락 실태와 그 관계」발표62년 1월학위-학직 수여위원회 제4차 상무위원회에서 의학박사 학위, 평양의학대학 생물학 강좌장63년 11월경락 연구의 새 성과에 대한 학술 논문 발표>64년 3월내각 직속 「경락연구원」 창설에 따라 경락연구원장64년 4월생명 유기체의 자기 갱신에 관한 신학설 제창김봉한,『북한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간단한 그의 이력이다. 김봉한은 의학 뿐만 아니라 물리학, 화학, 수학등에도 뛰어난 식견을 갖춘 과학자였다. 일제 대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해 북한에서 교수생활을 계속했다. 김봉한은 당시로서는 첨단 분야였던 원자물리학에 관심이 깊었다. 그가 대학에서 공부하던 1930년대 말은 아직 최초의 원자폭탄도 만들어지기 이전이어서 원자물리학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공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분야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자물리학을 열심히 해둔 덕분에 나중에 경락체계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얻는다. 그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방사선 방출 성질을 이용한 방사선추적법을 이용해 경락의 존재를 증명했던 것이다.***** 경락의 대발견 *****김봉한은 1960년대,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경락을 추적해 나간다. 전자현미경, 분광분석기, 오토라디오그래프, 특수색소도포, 전기적 분석 등으로 당시 선진국의 과학자들도 접근하기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김봉한이 그런 기계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독특한 실험연구방법을 창안하여 경락의 실태를 파악하였는바, 동물 및 인간 유기체 내에는 조직학적 및 실험생리학적 성질에 있어서 신경계통, 혈관 및 임파 계통과는 명확히 구별되며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해부조직학적 계통으로써 경락 계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해명하였다』1962년 북한에서 발행하는 『조선중앙연감』에서 김봉한이 경락의 실체를 발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경락상의 중요 지점인 경혈(經穴)은 침을 놓고 뜸을 뜨는 자리이므로 경락론은 한의학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경락과 경혈의 해부학적 실체가 밝혀지지 않아 서양의학에서는 그 존재를 무시하고 있었다. 나아가서는 경락을 토대로 전개되는 동양의학 전체를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학이라고 멸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발행된 『세계미신사전』에는 동양의학이 미신의 하나로 등재돼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경락의 과학적 객관적 실체를 구명했다고 하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1964년의 『북한중앙연감』에는 김봉한팀의 계속적인 놀라운 연구 성과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김봉한 교수를 비롯한 경락 연구집단들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1961년 경락실태를 발견한 후 그에 관한 연구를 독창적 방법으로 더욱 심화 발전시켜 경락계통의 형태와 그 기능의 전 면모를 기본적으로 확정하였으며 특히 핵산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을 세상에 내놓았다.(중략) 경락계통에 관한 연구 성과는 경락 계통의 엄격한 객관적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생체의 조절기전을 포함한 생명 현상의 근본문제를 일면적으로 설명하여 온 기존 학설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이 업적은 세포의 분화, 물질대사, 유전, 유기체의 반응현상, 질병의 발생과 그 발전 등 현대 생물학과 의학 부문 앞에 제기되고 있는 당면한 근본 문제들을 연구 해명함에 있어서 광명한 전망을 열어주며 또한 인간의 건강과 장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새로운 서광을 비춰준다. 이 위대한 발견은 현대 생물학과 현대 의학 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한 혁명적 사변이며 세계과학사에 금자탑을 이루어 놓았다』 김봉한팀은 1961년 「경락에 관한 제1논문」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63년 「제2논문」을 발표했다. 제2논문은 경락의 실체가 분명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경락의 기능이 동양의학 고전에 기록되어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생물학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유사 이래 축적된 서양의 모든 과학업적에 가해진 한 방의 케이오(KO) 펀치 같은 것이었고 가히 혁명적인 사변의 뜻을 띠고 있었다. 북한 당국의 대대적인 선전에 힘입어 김봉한팀의 연구성과는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북한을 방문했고 김봉한팀에 대한 초청장이 쇄도했다. 이 연구 성과는 동양의학 이론에 확고한 과학적 및 물질적 근거를 부여하며 현대 생물학과 의학의 각종 이론들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 것이었다. ***** 세포복제의 수수께끼, 산알학설 *****그리고 다시 1년 3개월만인 1965년 4월 제3논문 「경락학설」과 제4논문 「산알학설」이 발표되고, 6개월 후 1965년 10월 제5논문 「경락의 객관적 실체 구명」이 마지막으로 발표되기에 이른다. 김봉한 연구팀의 성과는 마침내 『봉한학설』이라는 독특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서양의학을 전공했지만 폭넓은 기초과학 지식을 갖고 있던 김봉한은 연구에 착수한 지 5년 후부터 경락과 기의 객관적 실체를 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락은 고전 경락학설의 설명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 경락은 생명의 발생과 유지를 원천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봉한학설에서 침구술 같은 경락 조절 의술에 의한 질병 치유 효과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연구 중의 하나는 태아 수태시의 경락에 대한 관찰이다. 놀랍게도 수정란으로부터 태아가 수태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경락 조직이었던 것이다. 경락이 가장 먼저 발생해 다른 조직의 형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락이 생기지 않고는 다른 어떠한 조직이나 기관도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경락에 이상이 생기면 해당 기관에 이상이 생겨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과 건강을 관리할 때, 생명 유지의 원천적 책임 조직인 경락을 조절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김봉한팀은 계속해서 서구의 의학과 생물학에서의 설명들을 뒤집어엎는 결과들을 발표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1965년에 발표한 「산알학설」이었다. 산알학설의 골자는 세포 이전의 형태로 산알이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경락을 순환하면서 세포의 생성과 사멸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포가 세포분열에 의해서만 생긴다는 종래의 세포이론을 뒤엎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고전 경락이론을 하나의 거대한 학문 체계로 완성한 김봉한팀의 독보적 업적이었다. 봉한학설은 1960년대 초반 북한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북한 당국은 그것을 국내외에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폐기되는 봉한학설 *****그러나 북한이 「세계과학사에 금자탑을 이룬 업적」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김봉한의 봉한학설. 한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과 경혈의 실체를 밝혔다고 알려진 봉한학설은 하루아침에 폐기되고 김봉한은 숙청당한다. 북한에서 1987년 일가족을 데리고 월남한 김만철씨의 증언에 따르면 봉한학설은 학문외적인 이유, 바로 정치적인 권력싸움에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김봉한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북한의 권력서열 제 4위인 박금철이 숙청되면서 김봉한도 지지기반을 잃어서 봉한학설이 유폐되었다는 얘기이다. 봉한학설의 탄생과 소멸이 박금철의 권력층 재임시절인 1956∼1967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가 1967년 이후 돌연 사라지게 된 것을 보면 김만철씨의 증언과 부합된다. 북한 당국이 김봉한의 공로를 치하하고, 급기야 그를 위한 별도의 연구소인 경락연구원을 설립하게 만들었던 『봉한학설』이 폐기된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 외에도 훨씬 복잡한 요인들이 겹쳐 있었다.***** 봉한학설을 부정한 서구의학계 *****김봉한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서양은 동양의학을 도무지 과학적 의학이라고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해부학 교과서에는 물론 경락이란 것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김봉한이 경락의 실체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경락이 생명의 발생과 영위에 결정적이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구명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경락이 엄연히 존재하고 또한 생명 현상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2천년의 전통을 가진 서양의학이 경락의 존재와 기능을 전혀 모르는 「반쪽 의학」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 현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모른 채, 어떻게 사람의 질병을 제대로 진료하고 또 어떻게 생명을 논할 수 있겠는가? 세계의학계는 긴장했다. 김봉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소련과 동구권은 물론이고 세계의 모든 의사와 관련 학자들은 경락의 개념을 기본으로 하는 동의학을 학습해야 될 판이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발표했던 모든 논문이 우습게 될 것이고 또 의학과 생물학에 관련된 각급 학교의 모든 교과서들을 고쳐 써야만 했다.한글로 쓰인 의학 서적과 교과서를 수입해서 공부해야 만 할 형편이었다. 그들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67년 소련 의학계에서 『경락에 대한 실태 발견은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소련의 불인정 발표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한의학 경시 태도 이외에도 소련 의학자들의 능력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방대한 분야의 학문과 기술에 통달한 위대한 천재과학자 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동의학계의 반발 *****봉한학설이 궁지에 몰리게 된 데에는 중국의 한의학계나 북한 내 동의학계의 지지 부족과 반발도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양 전통의학계에서 공식적인 반박이나 불인정 발표는 없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한(漢)의학계나 북한의 동의학계에서 적극적인 지지가 부족했거나 다소간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높이 평가받던 봉한학설이 소련 의학계의 간단한 발표 하나로 하루 아침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소련의 발표가 있은 1967년 이후에도 북한 내에서 봉한학설의 진위 여부에 대해 한동안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적극적인 지지가 불가능했던첫째 이유는 봉한학설이 전개하고 있는 경락 계통이 동의사들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만큼 거대하고 역동적인 체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처음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던 봉한학설의 경락 계통이 동의사들의 능력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에 뭐라고 논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심으로는 봉한학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둘째 이유는 김봉한이 구사한 연구 방법론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에다 전자현미경, 방사선 추적장치, 분광분석기 등 첨단 장비로 무장돼 동의사들의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셋째 이유는 기득권을 갖고 있던 기존 동의사들의 불만을 들 수 있다. 북한 정권 창립 후 줄곧 실시한 동의학 중흥 정책 덕분에 김봉한의 연구 발표가 시작된 1960년대에는 동의학계에 일정한 질서와 체계가 잡혀 있었을 것이다.따라서 능력이 있고 경험이 많은 동의사들은 동의학계의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서양의학을 전공한 김봉한이 동의학계의 최고 실력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에 기존 동의학계 원로들의 반발이 컸을 것임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앞에 말한 세 가지 이유 외에도 동양 전통의학계의 반발을 유발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동양 전통의학에서 수천년 동안 경락이란 명칭으로 불리던 것을 김봉한의 이름을 따서 「봉한관」이라고 다시 명명한 점이었다. 그리고 경혈은 「봉한소체(小體)」라 명명했던 것이다. 수천년 동안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의학계에서 공히 경락이라 부르던 것을 하루 아침에, 별로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람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바꾸는 것은 전통의학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황제(黃帝)나 신농(神農)과 함께 많은 의인(醫人)들이 추앙하던 역사상의 명의들에 대한 불경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그러나 김봉한 연구팀이 경락을 다시 명명하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경락을 추적하다 보니까 경락 계통이 고전 전통의학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면서도 조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북한에서는 어떤 작품이나 업적에 창설자나 공로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제철소 등이 그 예다.***** 생체실험 여부에 대한 논란 *****북한당국이 김봉한을 정치적으로 숙청해야 했던 절박한 이유가 바로 생체실험 여부에 대한 논란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956년대 후반 경락을 연구하던 김봉한팀은 생체실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경락이 생물의 죽음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기에 오직 살아 있는 생물에서만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동물실험을 통해서 경락을 확인했다. 그러나 인체에서 경락을 확인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수술시에는 살아 있는 인체 내부를 관찰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술이 목적이기 때문에 충분한 관찰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특별한 경우」의 조건이 조성되었다. 동의학 과학화 작업 추진을 결정한 1956년 8월 당대회에서는 「8월 종파사건」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소위「연안파」를 중심으로 한 반(反)김일성 세력이 조직적으로 김일성에게 저항했다 실패한 사건이었다.유례 없는 조직적인 저항에 혼이 난 김일성은 「8월 종파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 『인간 취급을 하지 말고, 씨를 말리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말로 믿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김봉한으로부터 인체 생체실험 필요성을 보고 받고 있었던 당국자들이 숙청된 종파분자들을 생체실험용으로 쓸 것을 김봉한팀에게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김봉한팀은 할 수 없이 생체실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봉한학설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외국 학자들은 봉한학설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생체실험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봉한학설에서 생체실험 문제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였다.생체실험을 했어도 문제가 되지만 하지 않았어도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생체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경락이 살아 있는 생물체에만 존재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실험만으로 인체에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된다. 했어도 문제가 되고, 하지 않았어도 문제가 되는 심각한 사안임을 깨달은 북한 당국은 서둘러 봉한학설을 폐기하고 김봉한을 숙청하는 것으로 문제를 덮으려 했을 것이다. 이상의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결국 김일성은 김봉한의 발견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김봉한이란 이름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그의 학설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돼버렸다. 『조선중앙연감』에는 1962∼1965년 판까지는 김봉한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그 어디에도 김봉한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동의학 관련 자료와 인물을 집대성한 『동의학사전』에도 다른 동의학자들은 많이 소개돼 있지만 김봉한은 없다. 철저히 폐기시켜버린 것이다. 「조선의 망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견디지 못한 김봉한은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연구원 건물 고층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혹자에 의하면 아오지 탄광으로 유폐되어 거기서 자살했다는 말도 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김봉한이란 이름은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김봉한 『Kim Bonghan』 ***** 미국의 한 의학박사가 의학의 정통 이론에서 벗어난 여러 가지 대안적 의술을 소개한 베스트셀러(1988년 발행)는 침술 편에서 김봉한을 다루고 있다.「김봉한」이라는 한국인 이름의 영문 표기「Kim Bong Han」「North Korean Scientist」, 즉 「북한의 과학자」라는 대목이 있는데, 책에는 김봉한팀이 서양 의학과 과학이 빠뜨리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김봉한팀이 동양의학의 핵심적 개념인 경락의 실체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경락이 진단과 치료의 핵심체이며 아울러 생명 현상의 근원이라는 것을 구명했다』고 적고 있다. 경락이란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신비스러운 개념이기는 하지만 그 실체를 구명할 수가 없어서 현대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그 실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서양의학을 전공하는 일본의 의학자들은 「동양의학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서원당 1991)에서 '봉한소체와 봉한관은 이론이 대단히 정연하게 기재되어 있어서 이것이 고전적인 경혈과 경락을 해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그 후의 추론적 실험들이 실체가 불명인 채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봉한학설은 그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많아 앞으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봉한학설의 가치를 조심스럽게 평가하고 있다. 봉한학설에서 경락관, 다시 말해 봉한관은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조직이다. 생명현상을 논할 때 봉한관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조직을 왜 현대의 의학자들은 적극적으로 확인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한의학을 객관화하고 현대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봉한학설을 어째서 이토록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전통의학은 그 세가 서양의학에 밀리기는 했지만, 동부아시아 지역에서 그 맥이 유지돼 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전통의학이 서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중국을 방문한 서양 인사들이 침술의 놀라운 효능을 경험하고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널리 알렸던 것이다. 이후 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침술을 연구했다.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그들은 『경락과 경혈의 존재 여부야 어떻든간에, 분명한 것은 침술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서양의학의 대세는 경락의 존재와 침술을 공인하지 않는 쪽이다. 경락의 존재와 침술의 공인은 곧 서양의학의 자존심의 엄청난 실추와 의학계의 일대 개편을 의미하는 것이다.***** 봉한학설의 미래 *****봉한학설은 전통적 침구법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외에도, 최근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 대안적 건강법들, 즉 기공(氣功), 단전호흡, 도인(導引) 법 같은 것들이 서양의학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기법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이 기법들은 모두 경락과 기(氣)의 개념에 그 이론적 토대를 두 고 있는 것이다. 봉한학설은 또한 인류에게 노화와 죽음의 문제에 도전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체의 주요한 기관은 모두 경락 계통을 순환하는 산알에 의하여 끊임없이 갱신 되고 있다. 이러한 경락과 산알의 기능이 곧 그 개체의 노화와 죽음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산알을 순환시키는 경락 계통의 기능이 쇠퇴하면 노화가 일어나고, 기능이 정지 하면 그 개체에 죽음이 닥쳐오는 것이다. 경락의 기능이 쇠퇴하지 않으면 노화 현상이 생기지 않고, 또 경락의 기능이 정지하지 않는 한 죽음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봉한학설의 출현과 그 후속 연구 성과는 전세계 인류의 질병을 백발백중으로 치료하고 노화를 억제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도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이러한 백발백중의 의술은 근대에 있어서 서구 과학 기술을 압도하는 최초의 거대한 원천기술이기 때문이다. 치료 기술의 판매에 의해 엄청난 부(富)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세계 인류가 쓰는 의료비용을 어림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의료비용을 전세계 GNP의 1%로만 잡아도 수천억달러에 이른다. 전세계 경제력의 판도를 바꿀 만한 엄청난 돈이다.이 글은 OK 종합병원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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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의 신(神)의 기류(氣流)는 무궁한 조화다. 모든 신(神)은 우주의 신경(神經)이고 기류(氣流)는 우주의 경락(經絡)이니 무한한 신비다. 인신(人身)의 모든 신은 신경이니 영으로 화하여 무한한 조화이고 모든 기(諸氣)는 경락(經絡)이니 정(精)으로 화하여 무한한 신비이다. 신경은 8만4천이니 8만4천 모공(毛孔)이고 경락은 12만 9천 6백이니 온몸 3백6십도 12장부에서 한 장부에 만 8백 경락이니 12장부에 12만 9천 6백이다. 지구도 12회(會)니 1회 만 8백리이고 12회에 12만 9천 6백이니 1원(元)이다. 지구 동서는 12만 9천 6백리요. 남북은 12만리다. ※지구의 4주(週)는 1주가 9십 도라 1도가 3백6십리다.  북(北)은 구로주(瞿盧洲)요 남(南)은 섬부주(贍部洲)요 동(東)은 승신주(勝神洲)요 서(西)는 우화주(牛貨洲)다. 4주에 3백 6십 도이다. ※우주는 5주다.  북은 구로주니 무우세계(無憂世界)라 부동존여래불(不動尊如來佛)이오 남은 선부주니 환희세계(歡喜世界)라 보승존여래불(普勝尊如來佛)이오 동은 승신주니 만일세계(萬一世界)라 약사유리광여래불(藥師琉璃光如來佛)이오 서는 우화주라 극락세계니 나무아미타불이라 중(中)은 중방주 화장세계(中方洲 華藏世界)니 십신비로자나불(十身毘盧遮那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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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중지화(水中之火)가 있고 금중지화(金中之火) 있고, 수중지화(水中之火)는 자연 고대로도 있고, 사람이 물을 끓여 넣는 거 있고, 무쇠를 가지고 강철 만드는데 1500도 이상 고열을 여러 번 가하거든.  쇠는 찬데 그 강철 속에 불이 있다. 건 전류거든. 강철속의 불은 공기중에 항상 유통(流通)되는 거야. 고압선의 전기가 만리를 가도 쇠하지 않는 건 공간 전류의 도움을 받아서 그래. 전선속의 불이 공기중에 유통하면서 도움을 주고 받아요. 보이지 않는 세계지만 건 확실한데. 수술을 한다. 칼이 강철이기 때문에 고 칼 속에 무한의 불이 있어 칼로 살을 버히놓면 칼에서 불 나온 정도에 따라 살 속 모든 신경 경락이 전부 합선되고 말아. 큰 상처가 오는 게 그거야. 칼 속에 무한의 불이 대번에 확 들어가. 지금 의서는 백지장이야. 칼로 암수술하고 항암제 쓰면 청강수처럼 살이 뚝뚝 떨어져 나가 청강수에 살이 타서 떨어지는 건 알지만 항암제가 청강수보다 독성 강하다는 건 몰라. 전립선 암, 칼 대가지고 망치고 말아. 소변 대변 이상 없나? 잠자기 좀 괴로울 정도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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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10개월과 경락
    ♥임신 1개월은 배태(胚胎 )라고 하는데 이 때는 엄마의  "족궐음 간경맥"이 태아를 기른다. -간-은 근육과 혈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태아가 처음 생기는 시기여서 엄마는 근육과 혈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힘든 일을 하지말고 놀라거나 차가운 쇠소리 등을 피해야한다. ♥임신 2개월은 시고(始膏)라고 하는데 이때는 엄마의 "족소양 담경맥"이 태아를 기른다. 이때는 간과 담의 기운에 맞게 신맛의 음식을 먹게되고 구토나 헛구역질 등 입덧이 심해진다. 또한 변덕이 심해지고 우유부단 해지는데 이는 담낭이 허해지기 때문이다.   ♠임신 3개월은 시태(始胎)라고 하는데 이때는 엄마의 "수궐음 심포경맥" 이 태아를 기른다. 태아의 태반이 완전히 착상을 하고 남녀의 구분이 분별되는 시기로 이 때는 엄마가 잘 놀래거나 우울해지거나 쉽게 화를 내는 시기이다. 이는 심포가 심보 즉 마음을 뜻하고 심장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4개월이 되면 엄마의 "수소양삼초경맥' 태아를 기르게 되는데 태아의 형상이 뚜렷해지고 육부가 순차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 때는 명치끝이 답답해지고, 구토가 생기며 배가 더부룩해지면서 입맛이 없어진다. 소변도 시원치않게 자주 보고 아랫배가 당기고 아플 수가 있다. ♧임신 5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태음 비경맥"이 태아를 기르게 되는데 태아의 근골, 기육, 모발 등이 이루어지고 소화기관과 몸을 만들어 주는 시기이다. ♧임신 6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양명위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이때는 태아의 이목구비가 완성되고 사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는 마음이 불안하고 몸이 춥거나 무거우며 잘 놀래고 두려움을 잘 느낀다. 임신 7개월이 되면 엄마의 "수태음 폐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태아의 피부와 모발기능을 완전하게 해준다. 이때는 호흡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곤란해질 수 있으며 기혈이 흐트러질 수 있다.   ⊙임신 8개월이 되면 엄마의  "수양명 대장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태아의 구규기능을 주재한다.   ⊙임신 9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소음신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이때는 태아의 형상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임신 10개월이 되면 엄마의 "족태양방광경맥"이 태아를 기르는데 이때는 기를 충분히 받아서 오장 및 육부그리고 나머지 기관이 모두 갖추어진다.
    인산의학태교법
  • 사람의 신경은 정근과 경락과 혈관
    사람은 신경과 정근(精筋)은 간(肝)에 속하니 간은 혈해(血海)라 수혈(收血), 생혈(生血)하는 장부다. 경락과 혈관은 심장에 속하니 심장은 혈해(血海)라 혈관으로 양혈(陽血)을 전파하고 경락은 가죽과 살(皮肉)로 음혈(陰血)을 나누어 간직한다. 그러나 신경이 허냉(虛冷)하면 경락은 쇠약하고 골수부실(骨髓不實)로 근골이 무력하여 기허동풍(氣虛動風)하니 힘줄은 늘어나고 뼈마디는 물러난다. 치료법은 중완혈(中腕穴)에 뜸을 뜨면 12장부의 기능이 정상이 되고 관원혈(關元穴)에도 뜸을 뜨고 상반신은 견우 곡지와 하반신은 환도삼리를 뜨면 신경과 경락이 완전정상이 되고 골수가 충실하고 근골이 경강(硬强)하여 무병장수한다.
    인산의학자연건강법
  • 우주의 신(神)의 기류(氣流)는 무궁한 조화다. 모든 신(神)은 우주의 신경(神經)이고 기류(氣流)는 우주의 경락(經絡)이니 무한한 신비다. 인신(人身)의 모든 신은 신경이니 영으로 화하여 무한한 조화이고 모든 기(氣)는 경락(經絡)이니 정(精)으로 화하여 무한한 신비이다. 신경은 8만4천이니 8만4천 모공(毛孔)이고 경락은 12만 9천 6백이니 온몸 3백6십도 12장부에서 한 장부에 만 8백 경락이니 12장부에 12만 9천 6백이다. 지구도 12회(會)니 1회 만 8백리이고 12회에 12만 9천 6백이니 1원(元)이다. 지구 동서는 12만 9천 6백리요. 남북은 12만리다. 지구의 4주(週)는 1주가 9십도라 1도가 3백6십리다. 북(北)은 구로주(瞿盧洲)요 남(南)은 섬부주(贍部洲)요 동(東)은 승신주(勝神洲)요 서(西)는 우화주(牛貨洲)다. 4주에 3백 6십도이다. 우주는 5주다. 북은 구로주니 무우세계(無憂世界)라 부동존여래불(不動尊如來佛)이오, 남은 섬부주니 환희세계(歡喜世界)라 보승존여래불(普勝尊如來佛)이오, 동은 승신주니 만일세계(萬一世界)라 약사유리광여래불(藥師琉璃光如來佛)이오, 서는 우화주라 극락세계니 나무아미타불이라. 중(中)은 중방주 화장세계(中方洲 華藏世界)니 십신비로자나불(十身毘盧遮那佛)이다.
    인산의학교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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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락학설**
    經絡  第1節  經絡學說의 槪要 經絡은 전신에 두루 퍼져 있는데 인체의 氣, 血, 津液이 운행하는 주요 통로이며, 인체의 각 부분이 서로 연결되게 하는 길이다.  예컨데 󰡔難經󰡕1)에서 “經脈은 血과 氣를 운행시키고 陰陽을 통하게 하여 몸에 영양을 공급하게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인체의 모든 臟腑, 器官, 孔竅 및 皮毛, 筋肉, 骨格 등의 조직은 經絡의 交通과 連結에 의해서 하나의 통일체로 이루어진다. 經絡은 인체내의 각 부분간의 상호관계와 그들 사이의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밝히고, 이러한 상호관계가 인체의 생명활동이나 病理變化,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는 臟腑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韓醫學의 기초이론 가운데 중요한 구성성분이 되고, 韓醫學의 임상 各科 특히 침구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經絡學說은 동양인들이 수천년이래 질병과 싸운 경험의 총괄로 이룩된 것이다. 고대의 醫家들은 장기적인 의료실천과정에서 인체의 질병에 나타나는 각종 證候와 치료에서 얻어지는 효과를 관찰하여, 인체에는 각종의 일정한 현상이 있음을 더욱 알게 되었다.  예컨대 身體表面의 一定部位를 刺戟하면 어느 體表 혹은 內臟의 疾病을 治療할 수 있으며, 內臟機能에 病理變化가 발생하면 전신 혹은 體表에 각종의 相異한 症狀과 體徵의 반영이 나타나고, 개개의 臟器에 疾患이 있으면 상호 영향을 미치어 疾病의 傳變과 발전에도 일정한 과정이 있다는 등등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장기간에 걸친 醫療實踐經驗의 축적을 통하여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됨으로써 이러한 經絡學說이 창립되었다.  經絡學說에 의하면, 인체내에 經絡系統이 있으며, 이로써 하나의 整然하고 統一된 有機體를 構成하게 된다. 體內의 各組織 臟器사이에는 모두 緊密한 關聯이 있어서, 經絡은 人體의 內外 表裏 上下 左右의 各 方面에 걸쳐 주요한 聯關作用을 하고 있다.  經絡에는 主幹과 分枝가 있어서, 內部로는 臟腑에 連屬되고, 外部로는 五官七竅(鼻‧目‧口唇‧舌‧耳)‧四肢百骸에 分布되어 全身을 綱目과 같이 連絡하여 氣‧血을 連行시키면서 體內와 體表에 流注하고 있다.  故로 󰡔靈樞․海論󰡕에서 說하기를 “夫十二經脈者, 內屬于臟腑, 外絡于支節……”이라 하여, 體內의 臟腑와 體表의 肢節사이에 密接한 關係가 있음을 主로 經絡의 關係에 의하여 實現되는 것으로 說明한 것이다. 鍼灸의 臨床에서는 經絡을 判別하고, 穴位를 選定하며, 刺法을 運用하고, 氣血을 調整함에 있어서 經絡理論이 基礎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靈樞․經別󰡕篇에서 說하기를 “夫十二經脈者, 人之所以生, 病之所以成, 人之所以治, 人之所以起……”라고 하였다. 이는 人體의 正常的인 生理機能의 維持와 疾病의 發生原因을 究明함에 있어서 모두 十二經脈과 重要한 關係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아울러 治療措置를 決定함에 있어서 十二經脈이 根據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  第2節  經絡의 作用  1. 運輸作用 韓醫學의 理論에 根據하여 說明하면 다음과 같다.  人體 臟腑의 生理機能이나 皮肉 筋骨 四肢百骸가 正常機能을 維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陽氣’와 ‘陰液’의 營養供給에 依存하는 것이다.  陽氣란 人體中의 各種의 氣 例컨대 元氣‧宗氣‧營氣‧衛氣‧臟腑의 氣 等을 가리킨다. 陰液이란 體內의 各種 營養液體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精液‧血液 및 津液 等이 包括된다.  이와 같이 陽氣와 陰液에 많은 內容이 包含되는데, 通常 氣血이라고 略稱한다. 氣血이 經絡을 通過하여 全身에 輸送, 散布됨으로써 組織‧臟器가 正常的인 生理活動을 發揮할 수 있다.  󰡔難經․二十二難󰡕에서 “氣主煦之, 血主濡之”라고 한 것은 氣가 機能活動의 에너지이고, 血이 濡潤 滋養의 源泉임을 가리킨다. 󰡔靈樞󰡕에서는 “經脈者, 所以行氣血而營陰陽, 濡筋骨, 利關節也”라 하였다.  이는 經脈이 氣血의 運行되는 經路이며, 經絡은 縱橫으로 交叉해서 體內와 體表에 分布되어 全身에 營養을 供給하여 生體가 正常的인 機能을 維持하는데 있어서 重要한 作用을 하는 것임을 가리킨 것이다.  2. 反應作用 人體에 만약 어떤 發病因子가 侵襲하여 臟腑의 正常機能이 損傷되어 疾病이 發生한 경우, 經絡은 生體의 各 部分과 特殊한 關係를 맺고 있으므로 經絡이 연결된 體表의 有關部位를 살펴보아 按壓하는 等의 方法으로 各種의 異常變化를 發見할 수 있다. 이러한 反應點을 現代名稱으로는 壓痛點 혹은 過敏點이라 한다.  古代의 醫書, 例컨대 󰡔千金要方󰡕에는 “摩呤肉之表, 肋間空處, 按之自覺牽引胸中”이라 하였고, 󰡔靈樞․九針十二原篇󰡕에서는 “五臟有疾也, 應出于十二原, 十二原各有所出, 明知其原, 睹其應, 而知五臟之害矣”라 하였다.  이러한 異常을 반영하는 體表의 반응점은, 질병을 진단하는데 참고가 될 뿐만 아니라, 刺鍼施治의 穴位가 된다. 古代의 문헌에 記載된, “以痛爲腧”󰡔靈樞․經筋󰡕와 後世에서 일컫는 阿是穴, 天應穴 등은 모두 이 原理에 의거한 것이다.  3. 傳導作用 經絡은 病邪의 侵襲에 依하여 傳導作用을 가진다. 體表에 侵襲한 病邪는 經絡을 통하여 內臟으로 傳入되고, 內臟間의 經絡의 關聯에 依하여 病邪는 하나의 內臟에서 다른 內臟으로 傳入하는데, 이를 “病邪之傳變”이라 稱하며 傳經이라고 略稱하기도 한다.  例컨대 󰡔素問․繆刺論󰡕에서는 “夫邪之客于形也, 必先舍于皮毛, 留而不去, 入舍于孫脈, 留而不去, 入舍于絡脈, 留而不去, 入舍于經脈, 內連五臟, 散于腸胃”라 하였다.  이는 經絡이 病邪를 傳導하는데 對한 古代 醫家의 綜合的인 槪念이며, 어느 정도 客觀的 實體와 符合되는 것이다. 鍼灸療法과 現代的인 電氣針‧水針 等 各種 方法은 物理的 或은 化學的 刺戟을 體表의 一定部位에 加하여 疾病治療의 目的을 達成하는 것이며, 이는 經絡의 傳導作用이라는 原理에 依據한 것이다.  人體에서 經絡의 氣는 全身의 颸穴에서 發生한다. 󰡔靈樞․九針十二原篇󰡕에서 “節之交, 三百六十五會, 所言節(颸穴)者, 神氣之所游行出入也”라고 하였다. 故로 刺戟의 主要關鍵은 調氣에 있다.  所謂 “刺之要, 氣至而有效”, “刺之而氣不至, 無問其數”(󰡔靈樞․九針十二原󰡕)이다.  調氣란 經絡의 傳導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氣血의 調整作用이다. 經絡 或은 內臟의 機能이 失調했을 때, 體表 一定部位를 鍼灸 等으로 刺戟함으로써 經絡이 그 治療性 刺戟을 有關한 部位와 內臟으로 傳導할 수 있다.  그래서 人體의 氣機가 調節機能을 發揮하여 氣血의 運行을 圓滑하게 하고, 營衛가 調和되어 疾病을 治癒하게 된다. 鍼灸治療와 經絡의 傳導作用과의 關係는 具體的으로 經絡이 循行하고 있는 經絡上에서 適當한 穴位를 選定하여 治療를 進行함으로써 表現된다.  經絡의 傳導作用은 刺針時에 病因이 酸, 脹 等의 感覺을 經絡의 循行經路를 向하여 擴散되는 것으로 느끼게 되며, 어떤 患者는 病所에 直達되는 것으로 表現되기도 한다.  그밖에 一部 病例에서는 刺針後에 病因의 皮膚에 이상한 色澤이 나타나서 線狀으로 延展되어 그것이 經絡의 分布經路와 基本的으로 一致되는 경우도 있다.  第3節  經絡系統의 分布 經絡이란 經脈의 總稱이다.  經絡學說에 依據하면 經脈과 絡脈은 人體各部를 縱橫으로 交叉하여 連絡網으로 分布되었는데, 臟腑에서 皮膚, 肌肉, 筋骨 等 一切의 組織에 이르게 되며, 經絡이 그를 貫通해서 하나의 統一的 綜合體를 構成하고 있다.  經絡系統의 構成內容을 四個 部分으로 나눌 수 있다.  즉 經脈과 絡脈은 안으로 臟腑에 屬하는 部分과 밖으로 體表에 連하는 部分이 있다.  그 主要內容은 經脈과 絡脈이다.  經脈과 絡脈의 區分은 다음과 같다. 人體의 主幹으로 縱橫하여 比較的 深層에 分布된 것이 經脈이고, 分枝로 橫斜行하여 比較的 表層에 分布된 것이 絡脈이다.  經脈과 絡脈의 關係를 論하면 經脈이 主體이고, 絡脈은 附着된 分枝로서 經脈과 絡脈은 密接하게 聯關되어 있다. 經絡은 經脈과 絡脈으로 나누어 지는데 다시 經脈은 正經과 奇經으로 나뉘어서 正經에는 12正經과 이에 딸린 12別經이 있고 奇經에는 奇經八脈이 있다.  다시 絡脈은 十五絡脈과 絡脈, 孫絡, 浮絡이 있다. 經脈은 肢體의 一定部位에 分布되었을 뿐만 아니라 體腔에 많이 分布되어 ‘經筋’과 ‘皮部’에 聯係되고 있다.  經絡系統의 具體的 內容은 아래와 같다. 經 絡 系 統 表 十二經脈 - 內屬臟腑, 外連肢節 十二經別 - 經脈에서 分出하여 다시 經脈으로 합친다 奇經八脈 - 別道를 奇行하는 經脈의 分枝 連絡經路 十五絡脈 - 主된 絡脈(大絡) 絡 脈 - 經脈이나 絡脈에서 分出된 橫斜行하는 分枝 經 絡 孫 絡 - 絡脈의 細小한 分枝 浮 絡 - 體表에 浮現하는 絡脈 內屬外連 內屬 - 臟腑 - 經脈 및 一部 絡脈과 連屬됨 外連 - 十二經筋 - 體表에 分布되고 臟腑에는 不入 十二皮部 - 皮部上의 經絡分布領域  1. 十二經脈  1) 十二經脈의 槪念 十二經脈이란 人體의 主軸을 形成하고 있는 縱的方向으로 貫통하고 있는 十二個의 幹線 卽, 手太陰肺經‧手陽明大腸經‧足陽明胃經‧足太陰脾經‧手少陰心經‧手太陽小腸經‧足太陽膀胱經‧足少陰腎經‧手厥陰心包經‧手少陽三焦經‧足少陽膽經 ‧足厥陰肝經 等을 指稱한다.  十二經脈은 全身에 分布되었는데 內行路線과 外行路線의 두 部分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陰經經脈은 五臟(六腑)中의 一臟에 內屬하며, 外行하는 徑路는 四肢의 內側에 分布된다.  陽經經脈은 六腑 中의 一部에 內屬하며 外行하는 經路는 四肢의 外側에 分布된다. 軀幹部에 있어서의 分布는 陽明‧太陰經이 身體의 前面을 循行하며, 太陽,少陰이 身體의 後面을 循行하고, 少陽‧厥陰經이 側面을 循行한다.  卽 手三陽經은 胸部와 上肢內側에 分布되고, 手三陽經은 頭部顔面과 上肢外側에 分布되며, 足三陽經은 頭部顔面과 下肢外側에 分布되고, 足三陰經은 胸腹部와 下肢內側에 分布되어 있다.  十二經脈은 胸背, 頭面, 四肢에 分布되었는데 모두 左右 對稱으로 되어 合計 24經脈이 된다. 其中 每一經脈의 陰經은 一條의 陽經과 體內에서는 臟腑가 相互 屬絡關係를 맺고, 體表에서는 內側과 外側이 表裏關係를 이루게 된다. 이들 十二經脈의 名稱의 由來는 다음 세가지로 說明되고 있다.  1. 陰陽學說에 根據하여 그 性格에 따라서 陰陽으로 分類하고 그 깊이에 따라서 三陰三陽으로 分類하고 있다.  2. 特定한 臟腑에 配當시켜서 각기 配當된 臟腑의 名稱을 붙이고 있다. 이때의 臟腑의 槪念은 機能으로 理解할 必要가 있다.  3. 各 經脈의 起始點이나 終着點에 該當되는 部位의 名稱(手足)을 各 經脈의 모두에 붙여서 呼稱하고 있다.  以上과 같이 經脈을 그 性格과 循行方法에 따라서 手足三陰三陽의 十二經으로 分類되고 있으나 이들 十二經은 각기 하나씩 獨立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고리처럼 連結되어 全身 어느 곳이나 미치지 않는 곳 없이 循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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