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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농경의 시작이 소금의 기원
    2.농경의 시작이 소금의 기원 소금의 용도의 1400가지에 이른다고한다. 식용으로나 공업용으로, 의료용 또는 식품가공용으로 소금은 종횡무진하게 활동한다. 사람들은 소금이 값이 쉽게 공급된다 하여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의료면에서의 용도는 상상밖으로 대단하다. 소금의 성분 소금의 주성분은 염화나트륨(NaCl)으로서 전체의 90%가량을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소금은 수분 외에 황산마그네슘(MgSO4), 염화마그네슘(MgCl2), 황산칼슘(CaSO4), 염화칼륨(KCl) 등의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산지(産地) 및 제조원료, 제조방법에 따라 성분에 다소 차이가 있다. 소금의 기원 소금은 먼 옛날부터 인간에게 직접 . 간접적으로 필수불가결의 물질로 존재해왔다. 소금의 기원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우나 농경이 시작되면서 소금이 본격적으로 필요하게 되었으리라 사료된다. 자 연식시대(自然食時代)에는 동물의 장기(臟器)를 그대로 섭취함으로써 인체에 염분 공급이 가능했으나 농경이 시작되면서 곡물 섭취의 비중은 커지고 동물 섭취는 상대적으로 감소했을 뿐 아니라 내장을 먹기보다 동물의 근육 부위를 즐겨 먹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식생활 변화로 인한 염분 섭취 부족은 소금을 제조할 절박한 필요성을 낳았을 것이다 중국에는 암염(岩鹽) . 염지(鹽池) . 염정(鹽井)등이 있기는 하나 이것만으로는 양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어 보자는 집념을 가졌을 것이다. 「英腎傳」에 의하면 염제(炎帝) 당시 섭사씨가 처음으로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황제(黃帝)때 비로소 소금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제염과정은 알 길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소금을 만들게 되었다. 「魏志」東夷傳 高句麗條에 의하면 노예들이 멀리서 어염(漁鹽)을 갖다가 상류층에게 공급하였다고 한다. 또 「漢書」에 의하면 바다를 접하고 있는 낙랑에서는 어염(漁鹽)이 풍부했다고 한다. 소금과 정치 소금은 鹽으로 표기한다.  鹵는 소금의 결정인테 이것을 皿(접시)에 받아 臣(신하)이  0(깃발)를 세우고 지킨다는 뜻. 鹽字는 소금의 전매(專賣)와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하대(夏代)에 벌써 소금에 과세하였다는 전설이 있고 「周禮」에는 소금이 과세품목에 들어가 있으며, 鹽人이라고 하여 소금을 다루는 직명까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나라의 관중(管仲)이 소금의 전매제를 창안하여 제(齊)나라의 부강을 이룩하였다. 관중은 소금에 대한 생리적인 연구를 하여 소금이 결핌되면 신체에 부종(浮腫)이 생기고 그런 현상은 악식(惡食)하는 사람에게는 심하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한대(漢代)에는 소금의 전매제가 확립되어 사염(私鹽)을 엄격히 금지했다. 한 무제(武帝)는 소금을 밀매하는 자를 왼쪽 발가락을 자르는 형에 처했다. 문헌상 나타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태조(太祖) 때 도염원(都鹽院)을 설치하여 소금의 전매제를 시행, 국가 재정의 주요 원천으로 삼았다. 고려의 염업의 정부의 과도한 통제로 인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조선(朝鮮)시대 초기에는 융통성 있는 염제의 실시로 염업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으나 말기에는 고려와 마찬가지로 쇠락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천일염전(天日鹽田)을 조성 . 확대시켜 나갔는데 생산은 관(官)이 주도했다. 해방 이후에도 염업전매제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러나 해방직후 심각한 소금부족 사태가 야기 되었으므로 그 해결을 위해 민간인에게도 염전개발을 허용하였다. 현재는 대한염업조합이 우리나라의 염업을 관장한다. 올해에는 소금 생산이 저조하여 소금을 대폭 수입하고 있다. 소금의 종류 소금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대표적 것은 다음과 같다. 재료에 의한 분류 천일염(天日鹽): 바닷물을 태양열로 증발시켜 만든다. 천일염은 공업 및 식료로 쓰이며 염도는                       90% 내외이다. 색깔은 백색이거나 투명하다. 한국산 천일염은 염도 80%내외의                       백색염이다. 암염(岩鹽):  지층(地層)의 일부을 이루고 있는 소금으로서 채굴을 통해 생산된다.                   암염은 공업 및 식료로 쓰이며 염도가 보통 90% 이상이다. 색은 보통 투명하나 지질                   에 따라 다르다. 정염(井鹽):  땅 속에서 나오는 함수, 또는 땅 속에 깊숙히 잠겨있는 함수를 끌어 올려 태양열이나                   화력으로 증발시켜 만든다. 조염(藻鹽):  해초를 건조하게 구워서 분말로 만든 소금. 염도는 90% 내외이고 인체에 유익한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가공 과정에 의한 분류 호염(胡鹽): 일명 청염(淸鹽). 알이 거칠고 굵은 천일염을 지칭한다. 염도는 가공염에 비해 낮다. 소염(소鹽): 호염을 볶아서 만든다. 소염은 간수성분이 호염보다 적고 미네랄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 아직 상품화된 것은 없다. 정제염(精製鹽): 소금성분 중 마그네슘 . 칼슘 . 황산근 등 염화나트륨 이외의 성분을 화학적으로                        제거한 소금 . 염도는 95% 이상이다. 죽염(竹鹽): 대나무 속에 소금을 넣고 아홉번 구워서 만든다. 제조과정을 탕해 소금속의 유해성분                 을 제거한다. 소금의 제조과정 수심이 깊지 않은 해변지대를 제방으로 둘러싸고 태양열을 이용하여 농축시켜 만든 것이 바로 천일염이다. 우리나라의 천일염 제조과정을 중심적으로 살펴보겠다. 우리나라에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1,000군데 가량의 염전이 있고 연간 60만통 가량 생산된다. 염전의 노동인구는 1만명이 넘으며 노동조건은 아주 열악하다. 염전은 크게 보아 세가지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둑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에는 썰물 때를 대비하여 염판에 실을 바닷물이 가두어져 있다. 다음으로, 물이 얕게 깔린 증발지는 염전에는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 저수지에서 끌어 올려진 바닷물은 대략 10단계로 나뉘어진 증발지를 거치면서 점차 농도가 짙어진다. 증발지 다음으로 소금을 거두어들이는 결정지, 또는 채염지가 있다. 증발지를 거쳐 결정지로 들어선 바닷물은 햇볕 아래 마침내 결정(結晶)을 이루면서 차츰 가라앉기 시작한다. 가라앉은 소금은 시간이 흐를수록 굵은 결정이 된다. 염부(鹽夫)들은 굴게 결정이 된 소금을 고무래 같은 것으로 긁어모은다. 이러한 과정의 천일제염업은 우리나라 산업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자본주의적생산방식이 들어선 부문이다. 염전은 적어도 5정보 이상이 되어야 구색을 갖추게 되니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자본이 상당량 요구된다. 그런 이유 등으로 이제 소규모 천일제염업은 쇠퇴하고 대규모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몇해 전에는 거대한 규모의 소금 공장이 울산에 들어서서 매년 10만통 가량의 가공염을 생산하고 있다. 소금의 용도 소금은 무려 1401군데에 이용된다고 한다. 그 많은 용도를 세세히 밝힐 수는 없고 여기서는 개괄적인 것들만 살펴보기로 한다. 식품에 쓰이는 소금 소금은 체내에 삼투압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필수불가결의 식품. 각종 미네랄이 함유되었을 뿐 아니라 음식의 맛을 이루는 기본요소이다. 또 식품을 저장하는 기능도 있는데 김치라든지 소금에 저린 생선, 장아찌 같은 것은 대표적 에이다. 공업용으로 쓰이는 소금 가성소다 . 암모니아소다 등 소다류를 제도할 때 이용될 뿐 아니라 합성연료 . 비누 . 합성고무 . 석유정제 . 요업 . 화약제조 등에 여러가지 용도로 이용된다. 의료품으로 쓰이는 소금 각종 의약품이 발달하기 전에는 소금이 임시변통약으로 잘 사용되었는데 특히 소독 및 감기에방 . 축농증 . 치질 . 화상 . 치통 . 목 아플 때 . 더위먹을때 자주 사용되었다. 그외에도 두통 . 현기증 . 가슴앓이 . 속이 막힐 때 . 위산 부족 . 복통 . 어금니 나지 않을 때 . 페결핵 . 위병 . 감체 . 식체 . 서체 . 안질 . 두드러기 . 부스럼 . 옻 . 편도선 . 종기 . 피 맺힌데 . 편두통 . 머리비듬. 파상풍 . 난산 등을 치료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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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 다슬기 기름
    고마운 마음 어디에 표현해야할지... 어제 저녁 늦게 다슬기기름 잘받았습니다. 아이스팩과 함께 잘포장 되어 있어 정성을 느꼈습니다. 작년에 한번 이 기름을 구하려고 했다가 못구한적이 있었습니다. 좋은거는 아나 직접하기에는 힘들고 만들어 파는 곳이 없어서 포기 했었는데.. 이번에 제가 건강상담하면서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기름이라해서 일반 기름처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냄새가 좋지는 않았는데 20cc정도 마시니 나름대로 먹을 만 합니다.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약 만들어주셔서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그럼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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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다슬기 기름 완성
    다슬기 기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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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다슬기 기름 완성
    "축"다슬기 기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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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합술 혼자 해보았지요.
    저는 종교가 불교이고, 수행에 관심이 많아 자주 좌선을 하는 편입니다. 좌선을 할때 기혈 순환이 잘되면 그만큼 정신 집중도 잘 되고 좌선하면서도 미묘한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렇지 않을때는 앉아있는것이 무척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오래 앉아 있다보면 척추가 종종 결릴때가 있어 스트레칭은 하고 있었지만 그냥 그냥 할 때가 많았습니다. 신약본초를 무척 즐겨보고 있고, 혼자 쑥뜸도 뜨고, 죽염도 자주 먹고 하였지만 기합술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는데 어느날은 그냥 해보고 싶어 책에서 설명한대로 한번 포즈를 취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들어 7할 정도의 힘만을 주고 해보았었는데 오래 지속은 못했지만 서너번 반복하는 동안 무척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이 가늘고 긴 편이라서, 그리고 척추가 약간 휘어있어 항상 머리쪽으로 기혈이 잘 돌지 않고, 몸 좌측으로 약간 문제가 있는 느낌이 자주 들었었는데, 척추에 바짝 힘을 주고 가슴을 내밀고 어깨쭉지에 힘을 주고하는 어찌보면 간단해 보이는 행동들이 그러한 문제들을 생각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치료해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힘을 주는 것은 순간적으로 아주 물살이 센 물을 흘려보내는 것과 같아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고, 휘었던 척추부분도 주변 근육에 평상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주고 앞으로 쭉 내미는 행위가 뭉쳐서 삐뚜르게 고정 되었던 부분을 이완시키고, 풀어주고, 근력을 강화시켜 교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흉부를 내밀고 어깨쭉지를 뒤로 내미는 행위는 갈비뼈와, 복부에 자극을 주면서 훨씬 튼튼해지게 하느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의 경우 보통 좌선을 하게되면 약 20~30분정도 지나야 기가 느껴지면서 순환이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기합술을 하게되면 금새 그런 느낌이 들면서 집중도 무척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운동삼아 해 볼텐데, 예방의학으로서 간단하면서도 무척 많은 효험이 있는 방법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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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슬기 작업 끝나고.청천강 에서.
    아이구 시원해^^오늘이 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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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슬기 기름 점화..^^
    좋은 기름이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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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슬기 기름 점화식.
    약쑥 으로 점화.^^좋은 다슬기 기름이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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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슬기 마지막 작업중
    겨 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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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슬기 기름 작업
    황토 작업^^김명수님.전미라님 그외 분들 너무 수고^^참 의령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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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슬기 선별 작업
    다슬기 작업중.상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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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슬기 행사안내입니다.
    좋은 다슬기를 구해서 기름을 내려 합니다.  다슬기기름을 드셔보셨거나 드시고 싶은분 한정 50분만 주문 받습니다.  다슬기 기름은 간암, 간경화 등 각종 간장질환에 탁월하며 평소 간의 건강유지를 위해서도 너무 좋습니다.  7월 15일까지 500cc에 14만원입니다.  인산--민물고둥이라고, 다슬기라고 있어요. 그거이 심산(深山)에서 나오는 건 상당히 비밀이 있어요.  그 새파란 것은 달이게 되면 파란 물이 나오는데 어머니가 흡수한, 호흡에서 흡수한 간(肝)을 이루는  세포 조직이 그 청색(靑色)인데 그 새파란 물이 인간의 간을 이류는 원료라.  그래서 간암(肝癌)에는 그거 없이는 간암을 고칠 수가 현실에 없고, 웅담하고 같은데 그것을 멀리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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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불청객 불쾌지수 줄이기
    여름 불청객 불쾌지수 줄이기       폭염에 이은 장대비로 시작된 장마가 앞으로 한 달가량 이어질 전망이다. 장마라고 해서 매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공기는 언제나 습하고 날은 어두침침하다. 게다가 기온은 한여름과 다를 바 없이 높으니 사소한 일에도 왈칵 짜증이 나기 쉽다. 불쾌지수는 온습도 ‘기분’ 지수 장마철에 사람들이 궂은 하늘처럼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불쾌지수가 높기 때문이다. 1957년 미국에서 고안된 불쾌지수는 기온과 습도에 따라 사람이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를 경험적으로 수치화한 것이다. 보통 오후 3시의 온도계 기온과 온도계에 젖은 거즈를 붙여 측정한 ‘습구온도’를 기준으로 불쾌지수를 산출한다. 불쾌지수는 1959년 여름 미국 300여 개 도시에서 발표된 뒤부터 일기예보에 포함됐다. 그러나 사람마다 더위와 습도에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불쾌지수 발표가 불쾌감을 더욱 조장한다’는 의견도 있어 최근에는 ‘온습도지수’라고 바꿔 부르기도 한다. 온도 낮춰도 공기 축축하면 불쾌 불쾌지수는 온도보다는 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장마철에는 날이 궂어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습도가 높아 강한 불쾌감이 느껴진다. 땀이 잘 증발하지 않아 체온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온 조절을 위해 피부에 가까운 말초혈관의 혈류량이 늘어 땀은 많아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수분과 전해질만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혈액량이 줄어 근육으로의 에너지 공급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쉽게 피로해진다. 따라서 장마철에는 컨디션 유지를 위해 물과 함께 무기질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는 것이 좋다. 실제로 남부 유럽 등 우리나라보다 여름철 기온이 높은 지역에 가 보면 ‘생각보다는 견딜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습기가 낮아서 땀이 나더라도 바로 말라서 끈적이지 않기 때문. 이런 기후대에서는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남성 정장을 입을 때 ‘여름에도 긴팔 셔츠를 갖추는 것이 에티켓’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여름철 습도가 낮은 유럽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습도를 잡아라 불쾌감을 줄이려면 기온과 습도를 함께 낮춰야 한다. 그러나 에어컨을 지나치게 틀면 냉방병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실내외 온도 차는 5∼8도 정도, 실내 온도는 23∼25도로 유지하면서 한두 시간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이 좋다. 에어컨이 없을 때는 선풍기와 함께 소형 제습기를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실내 습도는 50∼60% 정도면 적당하다. 습기가 심할 때는 2, 3일에 한 번 정도 보일러를 틀어주는 것이 좋다. 실내의 눅눅한 냄새와 습기를 빨아들이는 제습제를 비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햇빛을 받는 시간이 줄고 활동량이 적어지면 기분이 쉽게 우울해진다. 잠이 많아져 하루 종일 무기력해 하거나 식욕이 늘어 살이 찌는 사람도 있다. 날씨가 나쁘다고 집안에만 있지 말고 가끔 가까운 곳에라도 외출을 하자. 실내조명은 가능한 한 환하게 밝힌다. 자기 전 가벼운 운동과 스트레칭을 하고 너무 차지 않은 물로 샤워를 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단 몸과 머리를 완전히 말리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한방에서는 율무에 몸속의 습한 기운을 제거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해 여름에 즐겨 먹을 것을 권한다. (도움말=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유준현 교수, 정신과 윤세창 교수,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강희철 교수,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이재동 교수) 불쾌지수에 따른 불쾌감 정도 68∼70 쾌적 70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타남 75 전체 10%가 불쾌감을 느낌 80 전체 50%가 불쾌감을 느낌 83 모든 사람이 불쾌감을 느낌 86 이상 모든 사람이 심한 불쾌감을 느낌 ▼장마철 식중독 끓여먹으면 괜찮다?…독소는 안 없어져▼ 덥고 축축한 장마철에는 음식이 상하기 쉬워 배앓이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바짝 익힌 고기나 생선은 안심하고 먹어도 될까? 재료와 주방 위생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다. 음식을 끓이고 익혔다고 해서 무조건 식중독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사람 피부에 많은 ‘포도상구균’은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조리한 음식물에서 번식하면서 독소를 만들어 낸다. 이 독소는 끓이거나 가열해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음식을 익혀 먹더라도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음식은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안전하다. 이 독소에 오염된 음식을 먹으면 대개 1, 2시간 이내에 증상이 나타난다. 설사도 하지만 구역질과 두통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원인 균이 장에 들어와서 증식을 한 후에 독소를 내거나 장 점막을 침범해 생기는 식중독도 있다. 이런 식중독은 음식을 먹고 3∼7일 정도 잠복기가 지나야 복통과 설사가 나타난다. 세균성 이질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질에 걸리면 설사에 피 또는 끈적끈적하게 덩어리진 점액이 섞여 나온다. 심한 열과 구토, 설사에 따른 탈수로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중독은 물과 음식을 잘 끓이고 익혀 먹으면 예방이 가능하다. 장마철 냉장실 온도는 5도 아래로 낮춰 놓자. 먹다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그냥 넣지 말고 한번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데운 다음 보관한다. 한번 사용한 칼, 도마, 식기, 행주는 반드시 끓는 물에 살균해야 한다. 날로 먹는 음식을 삼가고 과일 껍질은 벗겨서 먹는 것이 좋다. 조리와 식사 전후, 외출 후, 용변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 2005년 06월 27일  손택균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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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충에 대한 진실
    요즘 기생충이 어디 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기생충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바퀴벌레를 멸종시키는 게 불가능하듯, 기생충이 지구에서 박멸될 날도 여간해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기생충과 공존하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면, 기생충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올바르게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 일환으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기생충에 대한 진실 몇 가지를 알아보자. 기생충에 대한 진실 1 - 바다회의 진실 양식이 아닌 자연산 민물회를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된다는 건 다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바다회는 어떨까. 짠 바닷물이 기생충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담도(쓸개와 십이지장을 잇는 관) 안에서 간디스토마가 별탈없이 사는 것처럼, 짠물이 수시로 오가는 바다생선의 몸 안에도 기생충은 많다. 그 중 하나가 광절열두조충이란 기생충이다. 연어회를 통해 사람 몸 안에 들어오면 장 속에서 몸을 포개가면서 길이를 늘려가는데, 긴 것은 10m에 달하기도 한다. 증상은 미약한 편이지만, 그렇게 큰 것이 우리 몸에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할 일이다. 약을 먹여서 항문으로 꺼낸 벌레를 보고 입맛을 잃은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일까.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연어 20% 남짓에서 이 기생충의 유충이 발견됐다. 현미경을 동원해야 볼 수 있는 간디스토마의 유충과 달리, 광절열두조충의 유충은 눈에 보인다. 그러니 연어회를 먹을 때 희고 기다란 뭔가가 발견된다면 먹지 말고 대학 의대 기생충학교실로 연락하시라. 기생충이 맞다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유충이 발견된 적이 없는 희소성을 감안해 볼 때 몇 만원의 사례비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이것 말고도 바다생선에 거주하는 기생충은 많이 있다. 바다에 사는 모든 생선은 아니사키스라는, 고래 회충의 유충을 가지고 있다. 역시 회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이게 사람 몸 속에 들어가면 위를 파고들어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데, 워낙 사례가 많다 보니 환자가 나온다 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정도다. 대부분 내시경으로 벌레를 꺼내면 되지만 재수가 없으면 맹장염에 걸릴 수 있다. 기생충 때문에 몸에 칼을 대는 건 좀 억울하지 않을까. 아니사키스는 원래 생선의 내장에 있다가 생선이 죽으면 근육으로 올라온다. 싱싱한 회를 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숭어에는 이름만으로도 해악을 짐작할 수 있는 유해이형흡충을 비롯해서 여러 종류의 장내 기생충이 들어있다. 숭어를 먹은 지 2주쯤 있다가 배탈과 설사가 생겼다면 십중팔구 장내 기생충에 걸린 것이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의사에게 기생충이 의심된다고 말하면 된다. 회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그 맛에는 분명 위험이 따른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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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는 술의 기원
    -고대시대- 우리 나라의 원시시대의 술은 얻기 쉽고 만들기 쉬운 과실주가 성행 하였을 것이고 유목시대에는 유주(柚酒) 가, 그리고 농경시대에 늘어가면서 곡물을 이용한 곡주(穀酒)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전해 내려온 주류로는 크게 나누어 약주류(藥酒類), 고급주류 (高級酒類), 가향 주류(加香酒類), 과실주류(果實酒類), 이산주류(異酸 酒類), 속성주류(速成酒類), 탁주류(濁酒類), 감주류(甘酒類), 소주류(燒酎類), 합주류(合酒 類), 약소 주류(藥 燒酎類),약용주류(藥用 酒類) 등 이다. 우리나라에는 술의 기원에 관한 신화는 없지만, 음주에 관한 전설은 고구려의주몽(晝夢) 신화에서 등장한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의하면 주몽의 아 버지 해모수(解募漱)는 물을 마시게하니그녀들은 놀라 달아났으나,큰딸 유화(宥和)는 해모수에 잡혀 그 날 밤술에 취한 대 로 해모수와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술에 얽힌 하룻밤의 인연으로 유화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주몽이라 는전설이 있다. 위지(魏志) 동이전 (東夷傳)에 의하면 이땅의 영고(迎鼓), 동맹(東 盟), 무천(舞 天)등 군집 대회(群集 大會)에서는 밤낮으로 식음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飮)이란 물론 술 을 가리키는 것이다.이밖에 동제(洞祭) ,산제 (山祭), 기제 (忌祭), 각종 고사 (告祀), 명절 제사 등에서 도 같은 뜻으로 술을 음복 (飮福)함으로써 신인공음(新人共飮)의 결과를가져온다는 믿음 속에서 의식이 행하여졌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1년 (28)에 지주(旨酒) (旨, 맛좋은음식→지)란 말이 나온다. 지주는 맛좋은 술이다. 맛좋 은 술이 있었으면 맛이 나쁜 술도 있었을 것이다. 발효식품의 나라가 고구려이니 누 룩을 써서 만드는 여러가지 술들이 중국 못지 않게 빚어졌 겠지만 현재아무런 문헌도 남아있지 않다. -삼국&통일신라시대- 삼국 형성기에는 이미 전래 곡주가 그 바탕을 이어 왔으며 고구 려에서는 건국 초기(서기28년)에 지주(旨酒)를 빚어 한나라의 요동태수 를 물리쳤다는 기록과, '스스로 즐기며 발효 음식의 저 장을 즐긴다.'라는 고서 기록 으로 미루어 볼 때 양조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해 석사 (東海釋史)와 지봉유설에서는 당대(當代)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은'한 잔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는 시를 소개해 놓았다.당대 문인들 사이에 신라주의 인기가 자못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의 술 빚기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동화되면서 독특한 술까지 빚게 된 것으로 짐작하며 실제로 일본 고사에는 우리에게서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다.일본의 [고사기]에 보면 웅신천황 때(서기 270 ~312), 백제의 수수거리가 새로운 방법으로 좋은 술을 빚어서 전하여 후세에 그를주신으로 모셨다고 하며, 우리 나라 스님 보리(保利)형제가 새술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이 새술이란 누룩을 써서창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후기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우리의 술은 상상 이상으로 다채로웠고 중국에서까지 그 명성이 떨쳐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송·원나라와 빈번 한 교류로 인하여 송·원시 대의 양주 법이 거의도입되었으며, 상류계층에 서 는 음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 시대의 사원은 오늘날의 여 관업을 겸하고 있었 기 때문에 사원에서 술을 빚어 팔기도 하였다. 한편 궁중의 양 온서라는 부서에서 국가의 의식용 술을 빚 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도경, 기명(器皿), 와준(瓦遵)에서 고려의 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서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송·원대를 통하여 중국에는 찹쌀술이 있었으나 고려 때는 중국 강남의 영향을 받 아 쌀로 술을 빚되 멥쌀을 쓰는 것이 서긍(徐兢)의 눈에 특이하게 비친 것 같다. 또 고려도경에서는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고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 술이 좋은 술의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의 술에 관한 구체적 제법에 관한 문헌은 없으나 중국의 덧술법을 배워서 한결 도수가 높아진 것이 아닌가한다. 1)고려시대의 대표주 *상용약주 : 청주(淸酒), 유하주(流霞酒), 방문주(方文酒), 동동주, 녹파주(綠波酒) *특수 고급약주 : 춘주(春酒), 천일주(千日酒), 신라주(新羅酒) *향양주(香釀酒) : 송주(誦呪), 국화주, 두견주, 계향어주(桂香御酒), 화주, 죽엽주, 포도주 *탁 주 : 백주(白酒), 이화주 *약양주(藥釀酒) : 오가피주, 백자주(柏子酒), 창포주, 자주(煮酒), 도소주(屠蘇酒) *구황주(救荒酒) : 천금주(千金酒 : 붉은나무인 천금목의 껍질로 빚는 술) (1)고려시대에 유입된 외래주 *행인자법주(杏仁煮法酒) : 문종 32년(1078년) 송나라 황제가 보낸 선물 중에 용봉차(龍鳳茶)와 행인자 법주가 있었는데 중국의 특급 법주를 만들 때 행인(살구 씨의껍데기 속의 알맹이)을 넣어 빚은 듯하다. *양주(羊酒) : 숙종 2년(1107년)에 윤관이 여진족을 정복하였을 때 하사품으로 내린 술인데 유주(乳酒) 문화권이었던 그 지방 유목 민족의 술이다. *계향어주(桂香御酒): 예종 12년(1117년) 이자겸이 송나라에 진공사(進貢使)로 다녀오면서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계피향이 들어가는 황실의 특용주인 듯하다. *화주(火酒) : 숙종 3년(1103년)에 화주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과실주의 일종인 듯하다. *마유주(馬乳酒) : 고종 18년(1231년)에 몽고의 침입 당시 유입된 몽고인의 술이다. *포도주 : 충렬왕 12년(1302년)에 원나라의 황제로부터 포도주가 우리 나라에 보내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상존주(上尊酒) : 충선왕 때(1309년) 유입된 술로서 중국황실의 주도가 높은 청주이다. *백주(白酒) : 중국의 백주가 충렬왕 때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백주는 소주가 아닌 양조주로서 주도 높은 명약주인 듯하다. *중산주(中山酒) : 고려 중엽에 유입된 술인데 중양법(重釀法)으로 빚어지는 그 당시중국의 대표적인 청주류의 하나다. *증류주(아라키주) : 고려 후반기에 유입된 술로서 몽고의 침공과 함께 다량으로 유입되었던 술이다. 이 당시는 증류주가 고급주로 취급되었다. -조선시대- 1)조선 시대의 대표주 우리 나라 주조 사상 주목할 일은 조선 시대에 오면서 지금까지 유명주로 손꼽히는 술들이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술도 고급화 추세를 보여 제조 원료도 멥쌀위주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 기술도 단사입에서 중양법으로 바뀌면서 양보다는 질 좋은 술들이 제조되는데 이때 양주로 손꼽히던 주품들은 삼해주, 백로주, 이화주, 부의주, 하향주, 춘주, 국화주 등이었다. 특히 증류주는 국제화 단계로 발달하여 대마도를 통하여 일본, 중국 등에 수출이 빈번하였다. 그 당시 우리 나라는 자가 제 조가 허가 되어 자유로이 발전되었으나, 중국에서는 관이 제조를 관장하게 됨에 따라 우 리 술의 수출이 용이하여 더욱 발전되었던 것 같다. 조선 후기로 접어 들면서 지방주가 전 성기를 맞이하는데 지방마다 비전(秘傳)되는 술들이 멋과 맛을 내면서 노출되기 시작한다. 이때의 명주로는 서울의 약산춘, 여산의 호산춘, 충 청의 노산춘, 평안의 벽향주,김천의청명주 등이 유명하였으며, 한편 소주에 각종약재를 응용한 술들이 새로 개발되었는데 전라, 황해도의 이강주, 전라의 죽력고가 유명하였다. 이밖에 약주의 산패 방지를 목적으로 양조주(곡주)와 증류주(소주)를 혼합한 혼성 주인 과하주 등이 여름에도 마실 수 있는 술로서 개발되었는데 그 중 김천의 과하주가 유명하다. 2)조선 시대 유입된 외래주 조선시대에는 다채로운 술들이 개발되었고, 적지 않은 외래주가 공존하였다. *천축주(天竺酒) : 세조 8년(1462년) 우리 나라를 방문한 유구국(琉球國) 사신 이계손(李繼孫)을 통하여 천축주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야자수 약을 발효 시켜 증류한 지금의 브랜드 같은 술이다. *미인주(美人酒) : 세조 8년에 천축주와 같이 들어온 술인데 유구국에서 미반 (米飯)에 주국(柱國)을 섞어 만든 술이다. 유구국에서는 제주로 쓰기 위하여 15세 처녀들이 밥을 씹어 만든다 하여 미인주라 하였다. *이황주(黃酒) : 성종 19년(1488년)에 최박(催拍)의 표해록(漂海錄)에서 황주의 이름이 나오는데 중국 청주의 일종이다. *섬라주(暹羅酒) : 태국의 술인 섬라주가 [동의보감]에 소개되는데 두번 증류 한소주로, 독하게 소주를 고아 장내의 제충(除蟲)을 죽이는 약용의 목적을 쓰여 졌다. *홍국주(紅麴酒) : 16세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술인데 동의보감에 소개된 흥국 누룩과 찹쌀로 빚은 청주 이다. * 동양주(東陽酒) : 16세기 중국에서 유입된 술로 일반 양조법에 약재를 넣어 빚은 술이다. *금화주(金華酒) : 중국 남경에서 빚어졌던 술인데 16세기에 우리 나라에 유입 되었다. 일반 미곡주에다 울금(한약재의 하나)을 넣어 빚은 술이다. *녹두주(綠豆酒) :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하여 유입된 흔적이 보이는데 녹두누룩으로 빚 은 약주의 일종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예록춘(醴綠春)이 이 술을 모방하여 빚어진 듯하다. *무술주(戊戌酒) : 조선시대 중기부터 그 제법과 함께 유입된 술인데 일반 약주와 빚는 방 법은 같으나 물 대신 동물을 고아 그 즙으로 술을 빚었던 몸보신 주이다. 3)조선 말기의 술 19세기 조선말에는 실학자들의 주질 향상 및 새로운 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고 조되고 국제화 시대로 접어들게 됨에 따라 외국과의 정보 교환이 쉬워지면 서양주 문화 가 도입된다. 주세법이 생기기 이전에는 자가 제조 및 판매가 자유로 웠던 관계로 술 도 다양하였으며 제조하는 장소 또한 무수하였다. 주세법 창설 당시 제조장 수는155,832장(場)이나 되었다. 그러나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 전통향토주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신식 술이라는 획일 적인 술이 제조되기 시작한다. 1920년을 기점으로 재래식 누룩에서 흑곡, 황곡의 배양균 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용 되어 전통주의 맥이 끊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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